■ 거북선 1편
■ 거북선 1편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배를 만드는 기술이 발달했다. 조선 함대의 무기 위력은대단했다. 조선은 초기부터 신기전, 화차 등 여러 화약 무기를 개발했다. 그 중 화약을 이용해 발사하는 화살인 화전과 천자총통, 지자총통 등 성능이 우수한 화포도 있었다. 그럼, 뛰어난 발상과 첨단 기술력을 토대로 만들어져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거북선은 언제 만들어졌을까?
거북선이 우리 역사 속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조선 초기부터이다. 《조선왕조실록》에는 1413년 태종 임금 때 『왕이 임진강 나루를 지나다가 거북선과 왜선으로 꾸민 배가 해전 연습을 하는 것을 보았다』는 기록이 나온다. 또 1415년 탁신이라는 문신이 『거북선의 전법으로 싸우면 많은 적과 충돌하더라도 적이 우리를 해칠 수 없으니, 거듭 정교하게 만들어 승리의 도구로 갖추어야 한다.』는 상소를 올렸다고 한다. 그러나 그 시절의 거북선은 크기가 작았고, 우리가 알고 있는 거북선은 3층으로 되어 있어 몸체가 매우 높다.
1592년 4월 11일, 그 동안 정걸과 나대용을 중심으로 개량해 온 불가사의한 신비의 돌격선 귀선(거북선)이 드디어 완성되었다. 배의 이름이 귀선(龜船)이 된 것은 완성된 돌격선의 모습이 흡사 거북과 비슷하였기 때문이다. 이 때 이순신장군은 모두 3척의 거북선을 건조하였는데, 전라좌수영인 진남관 앞 지금의 중앙동에서 이순신 자신이 직접 감독하며 만든 영귀선과 돌산섬 군내리에서 만든 방답귀선, 그리고 여천군 쌍봉면 조선소에서 만든 순천귀선이 그것이다. 1592년 4월 12일 아침, 이순신 함대의 최선봉 돌격선으로서의 새로운 임무를 담당하게 될 첫 번째 귀선(龜船) 영귀선이 건조되어 진수식이 거행되었다.
거북선에 대한 내용은 정조 19년(1795년)에 편찬된 《이충무공전서》에 실려 있는데, 그 내용을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거북선의 좌우 뱃전에 신방이라는 난간을 설치했고, 난의 머리에 가룡이라는 횡량을 걸쳐 뱃머리까지 닿게 하였다. 그 난간을 따라 판자를 깔고 그 둘레에 방패 판을 둘러 꽂았다. (중략)
방은 각각 12칸인데, 철물 보관소 2칸을 쓰고 나머지는 화포. 창검. 활과 화살 등의 무기고로 썼다. 아래층에는 19칸의 병사들 숙소가 있고, 왼쪽 포판 위에 선장실이 있고, 오른쪽에는 장교실이 있으며, 병사들은 평소 아래 칸에서 쉬다가 전투 시에는 포판위로 올라와 대포를 발사했다.』
- 2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