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곤일척乾坤一擲 - 하늘과 땅을 걸고 승부를 겨루다, 하늘에 운을 맡기고 단판으로 결행하다.
건곤일척(乾坤一擲) - 하늘과 땅을 걸고 승부를 겨루다, 하늘에 운을 맡기고 단판으로 결행하다.\xa0
하늘 건(乙/10) 따 곤(土/5) 한 일(一/0) 던질 척(扌/15)
하늘과 땅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 乾坤(건곤)이다. 天地(천지)와 달리 남녀 애정의 이치까지 포함하고, 더욱이 周易(주역)의 기본 四卦(사괘)인 乾坤坎離(건곤감리)의 앞자리도 된다. 하늘과 땅, 물과 불을 상징하여 우리 태극기의 빨강, 파랑 원을 둘러싸고 있다.
이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을 운에 맡겨 한꺼번에 던진다(一擲)는 말은 흥망과 승패를 한꺼번에 거는 대모험을 뜻한다. 천하를 얻느냐 잃느냐, 죽느냐 사느냐가 달려 있는 큰 승부를 말할 때 곧잘 사용된다. 천하는 아니라도 도박판에서 가진 것을 몽땅 거는 孤注一擲(고주일척)과 마찬가지로 살벌하기까지 한 모험의 의미도 있다.
이 성어는 力拔山氣蓋世(역발산기개세)의 천하장사 項羽(항우)를 그린 시에서 나왔다. 秦始皇(진시황)이 죽은 뒤 楚(초)나라 명문 출신으로 싸움판에서 연전연승하고 3년 만에 覇王(패왕)에 오른 항우는 한미한 시골 읍장이었던 漢(한)의 劉邦(유방)에게 마지막 垓下(해하) 전투에서 패하고 최후를 맞이한다.
張良(장량)과 韓信(한신) 등 명신의 진언을 잘 받아들인 유방에 비해 范增(범증)도 내치고 막무가내인 항우가 다 이겨놓은 楚漢(초한) 전쟁의 패배자로 굴러 떨어진 결과였다. 후세의 唐(당)나라 시인 杜牧(두목, 803~852)은 항우를 ‘흙먼지를 날리며 돌아올 것을 미처 몰랐구나(捲土重來未可知/ 권토중래미가지)’라며 애석히 여기는 시를 남겼다.
이보다 앞선 당의 문장가 韓愈(한유, 768∼824)가 항우와 유방의 경계를 이뤘던 격전지를 지나며 지은 ‘홍구를 지나며(過鴻溝/ 과홍구)’란 시에서 유명한 성어가 나온다. 내용을 보자. ‘용도 지치고 범도 고달파 강과 들을 가르니(龍疲虎困割川原/ 용피호곤할천원), 억만의 창생이 목숨을 보전했네(億萬蒼生性命存/ 억만창생성명존).
누가 왕에게 말머리를 돌리게 해(誰勸君王回馬首/ 수권군왕회마수), 실로 한 번 던져 건곤을 걸게 했는가(眞成一擲賭乾坤/ 진성일척도건곤).’ 한유는 물러나려는 유방에게 항우와 일전을 권유한 장량과 陳平(진평) 등을 천하를 걸었던 도박으로 여기고 이렇게 회상했다.
패가망신을 원하며 도박판에 뛰어드는 이는 없다. 모두들 자신이 최후의 승자가 되리라 여긴다. 진짜 고수는 처음 빈손이 되다시피 잃다가도 최후의 일격으로 뒤집는다. 암수가 있을지언정 처음엔 양보도 한다. 그런데 양보는 없고 사생결단만 있는 곳이 우리 정치판이 아닌가 싶다.
독재정권을 이겨낸 후 민주정권이 들어서고 몇 차례 여야 교체도 있었지만 선거가 있을 때마다 상대를 후벼 파고, 승리했을 때는 과거의 행적을 들춰 칼을 들이댄다. 하늘과 땅을 걸었더라도 자체는 상하는 것이 없다. 일전을 겨루되 정당하게 해야 보답이 온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