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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31일 일요일

경당문노耕當問奴 – 밭가는 일은 의당 종에게 묻는다, 모르는 일은 전문가에 따른다.

경당문노耕當問奴 – 밭가는 일은 의당 종에게 묻는다, 모르는 일은 전문가에 따른다.

경당문노(耕當問奴) – 밭가는 일은 의당 종에게 묻는다, 모르는 일은 전문가에 따른다.

밭갈 경(耒/4) 마땅 당(田/8) 물을 문(口/8) 종 노(女/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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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이 잘 하는 분야가 있어 그 일로 살아간다. 보통 사람은 어느 정도 타고난 재주이든, 뒤늦게 각별한 노력으로 습득했든 그것으로 생업을 영위한다. 하지만 모두에 능통할 수는 없어 분야마다 전문가가 있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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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자리에 있는 고위직이 잘 모르는 분야에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전문가의 의견을 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孔子(공자)도 지위나 학식이 자기보다 못한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말라며 不恥下問(불치하문)이란 말을 남겼다. 실제 뽕따는 아낙에게 구슬에 실 꿰는 법을 물었다는 孔子穿珠(공자천주)의 고사도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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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밭을 경작하는 농사일은 글을 많이 읽어 아는 것이 많을 주인도 모르는 분야다. 이런 일은 의당 머슴에게 물어보아야 한다는 뜻의 이 성어는 南朝(남조) 梁(양)나라의 문인 沈約(심약)이 쓴 ‘宋書(송서)’에서 유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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織當問婢(직당문비)라는 말도 같은 뜻으로 나왔다. 중국 남북조시대는 남쪽에 한족의 宋(송)나라가 북쪽의 五胡十六國(오호십륙국)과 대치한 서기 420~589년 시기를 말한다. 북쪽의 혼란을 수습한 北魏(북위)가 북방의 이민족을 치려고 군사를 일으키자 송나라의 文帝(문제)는 정벌할 기회가 왔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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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송에는 沈慶之(심경지)라는 책략이 뛰어난 무관이 있었다. 먼저 왕이 출병의사를 물었으나 아직 북위를 이길 수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문제는 고집을 꺾지 않고 전쟁경험이 없는 문신들을 불러 모아 논의했다. 심경지가 북벌의 실패를 들어 문신들을 꾸짖으며 여전히 반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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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를 다스리는 일은 집안일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밭가는 일은 농부에게 물어보고, 베 짜는 일은 하녀에게 물어야 합니다(治國譬如治家 耕當問奴 織當訪婢/ 치국비여치가 경당문노 직당방비).’ 그러면서 임금께 얼굴 허연 선비들과 전쟁을 도모하면 안 된다고 간언했다. 여기서 白面書生(백면서생)이란 성어도 나왔다. 이처럼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군사를 일으켰다가 참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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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랫사람에게 물어보는 것은 직위가 높은 사람에겐 체면이 깎이는 일이라 생각하기 쉽다. 부족함을 채워 일을 더욱 잘 처리하기 위한 것인데도 말이다. 하지만 전문가들도 다른 사람은 모른다고 벽을 쳐서 접근을 막고 자기들만의 이익을 도모하지는 않았는지 생각해야 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2024년 3월 8일 금요일

경당문노耕當問奴 – 밭가는 일은 의당 종에게 묻는다, 모르는 일은 전문가에 따른다.

경당문노耕當問奴 – 밭가는 일은 의당 종에게 묻는다, 모르는 일은 전문가에 따른다.

경당문노(耕當問奴) – 밭가는 일은 의당 종에게 묻는다, 모르는 일은 전문가에 따른다.

밭갈 경(耒/4) 마땅 당(田/8) 물을 문(口/8) 종 노(女/2)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이 잘 하는 분야가 있어 그 일로 살아간다. 보통 사람은 어느 정도 타고난 재주이든, 뒤늦게 각별한 노력으로 습득했든 그것으로 생업을 영위한다. 하지만 모두에 능통할 수는 없어 분야마다 전문가가 있기 마련이다. 높은 자리에 있는 고위직이 잘 모르는 분야에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전문가의 의견을 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孔子(공자)도 지위나 학식이 자기보다 못한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말라며 不恥下問(불치하문)이란 말을 남겼다. 실제 뽕따는 아낙에게 구슬에 실 꿰는 법을 물었다는 孔子穿珠(공자천주)의 고사도 따른다.

논밭을 경작하는 농사일은 글을 많이 읽어 아는 것이 많을 주인도 모르는 분야다. 이런 일은 의당 머슴에게 물어보아야 한다는 뜻의 이 성어는 南朝(남조) 梁(양)나라의 문인 沈約(심약)이 쓴 ‘宋書(송서)’에서 유래했다. 織當問婢(직당문비)라는 말도 같은 뜻으로 나왔다. 중국 남북조시대는 남쪽에 한족의 宋(송)나라가 북쪽의 五胡十六國(오호십륙국)과 대치한 서기 420~589년 시기를 말한다. 북쪽의 혼란을 수습한 北魏(북위)가 북방의 이민족을 치려고 군사를 일으키자 송나라의 文帝(문제)는 정벌할 기회가 왔다고 판단했다.

당시 송에는 沈慶之(심경지)라는 책략이 뛰어난 무관이 있었다. 먼저 왕이 출병의사를 물었으나 아직 북위를 이길 수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문제는 고집을 꺾지 않고 전쟁경험이 없는 문신들을 불러 모아 논의했다. 심경지가 북벌의 실패를 들어 문신들을 꾸짖으며 여전히 반대했다. ‘국가를 다스리는 일은 집안일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밭가는 일은 농부에게 물어보고, 베 짜는 일은 하녀에게 물어야 합니다(治國譬如治家 耕當問奴 織當訪婢/ 치국비여치가 경당문노 직당방비).’ 그러면서 임금께 얼굴 허연 선비들과 전쟁을 도모하면 안 된다고 간언했다. 여기서 白面書生(백면서생)이란 성어도 나왔다. 이처럼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군사를 일으켰다가 참패했다.

아랫사람에게 물어보는 것은 직위가 높은 사람에겐 체면이 깎이는 일이라 생각하기 쉽다. 부족함을 채워 일을 더욱 잘 처리하기 위한 것인데도 말이다. 하지만 전문가들도 다른 사람은 모른다고 벽을 쳐서 접근을 막고 자기들만의 이익을 도모하지는 않았는지 생각해야 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