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혜공주의 기구한 운명 1편
■ 경혜공주의 기구한 운명 1편
경혜공주(敬惠公主)는 조선 제5대 왕인 문종의 적장녀(嫡長女)이다. 조선시대 임금 중에서 가장 불쌍하고 가여운 단종의 친누이이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왕위에 올라 삼촌에게 왕위도 빼앗기고 목숨도 빼앗긴 단종 못지않게 파란만장하고 기구한 운명을 겪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여인이다. 10여 년 전 《공주의 남자》라는 드라마에서 그 삶이 다루어 진 적이 있다.
경혜공주는 세종이 왕위에 있을 때인 1436년에 세자 이향(李珦 :문종)과 권씨(현덕왕후) 사이에서 장녀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왕이 아닌 세자인 데다가 어머니가 세자의 첩이었기 때문에, 출생 당시의 경혜공주는 공주가 아니라 옹주였다. 세자의 정실부인, 즉 세자빈이 낳은 딸에게는 정2품 군주(郡主), 세자의 첩이 낳은 딸에게는 정3품 현주(縣主)라는 작위를 수여했다. 그것도 출생 직후 곧바로 작위를 주는 게 아니라, 보통은 일곱 살 이후에 작위를 수여했다. 아마도 유아 사망율이 높았기 때문이었으리라. 경혜공주는 처음에는 ‘현주’였던 것이다.
비록 첩의 딸이기는 했지만, 어린 공주의 삶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두 살 때, 어머니가 세자빈으로 승격되면서, 동궁전 즉 세자의 처소인 경복궁의 자선당(資善堂)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어린 소녀는 아버지가 왕이 되면 공주가 될것이라는 꿈을 안고 살았으리라. 하지만, 여섯 살 때 어머니가 동생(훗날의 단종)을 낳자마자 죽는 바람에 궁을 떠나야만 했다. 당시의 관습대로 재액(災厄)을 피하기 위해 궁(宮)이 아닌 조유례의 집에서 그 부인 및 외가의 여종인 유모 백씨의 손에 컸다. 그녀는 미모가 한양에서도 소문이 날 정도로 매우 아름다웠다고 한다. 이때까지도 그녀의 삶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 이 무렵부터는 정2품 평창군주(平昌郡主)라는 작위를 받고 그에 따른 특권과 대우를 누리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할아버지 세종의 건강이 악화되기 시작한 열네 살 때부터 경혜공주의 삶에는 그늘이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그녀가 열다섯 살이 되어도 세종이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왕실에서는 그녀의 혼인을 서둘렀다. 만약 세종이 사망한다면 삼년상(三年喪) 동안은 혼인을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삼년상의 기간은 36개월이 아니라 윤달을 제외한 25개월이었다(윤달이 있으면 25개월보다 길어졌다). 왕실 식구들은 보통 10대 초반에 결혼했기 때문에, 삼년상을 치를 경우 경혜공주는 혼기를 놓치게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왕실에서 급히 얻은 배우자는 전(前) 한성부윤 정충경(鄭忠敬)의 아들인 정종(鄭悰)이었다. 한성부윤은 오늘날로 치면 서울시장에 해당하는 관직이다. 《세종실록》에 따르면, 공주와 정종은 세종 32년 1월 24일(1450년 2월 6일) 혼인하였다. 이때 공주는 열다섯 살이었다.
- 2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