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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22일 금요일

고락상평苦樂常平 - 괴로움과 즐거움은 일상에 항상 있다, 한쪽에 치우치면 좋지 않다. 

고락상평苦樂常平 - 괴로움과 즐거움은 일상에 항상 있다, 한쪽에 치우치면 좋지 않다. 

고락상평(苦樂常平) - 괴로움과 즐거움은 일상에 항상 있다, 한쪽에 치우치면 좋지 않다.\xa0

쓸 고(艹/5) 즐길 락(木/11) 떳떳할 상(巾/8) 평평할 평(干/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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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苦海(고해)라고 흔히 말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사람은 살아가면서 괴로움과 근심이 항상 따라붙는다. 아무리 금수저로\xa0 태어난 행운아라도 喜怒哀樂(희로애락)은 다 있고 生老病死(생로병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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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로움에는 즐거움이 따르고 즐거움에는 괴로움이 따른다고 苦樂竝行(고락병행)이라 했다. 그래서 고해에 던져진 보통 사람들은 ‘즐거움과 슬픔은 이웃사촌’, ‘고통은 짧고 기쁨은 영원하다’ 등등의 선인들의 말에 위로를 받는다. 菜根譚(채근담)에는 ‘괴로움과 즐거움을 함께 맛본 후에 얻은 행복이 오래 간다(一苦一樂相磨練 練極而成福者 其福始久/ 일고일락상마련 연극이성복자 기복시구)’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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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가까이 유배생활을 하면서도 꾸준히 연마하여 실학을 집대성한 茶山(다산) 丁若鏞(정약용, 1762~1836) 선생도 비슷한 말을 남겼다. 괴로움과 즐거움(苦樂)은 일상에 항상 있는 것(常平)이고 서로 바뀌어 오고가는 것이므로 너무 치우치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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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이 전남 康津(강진)의 다산초당에 은거해 있을 때 지역 병영에서 虞侯(우후)로 있던 李重協(이중협)이라는 무관이 가끔 찾아와 분위기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3년여를 그렇게 출입하던 그가 한 번은 풀이 죽은 목소리로 임기가 끝나 서울로 가게 됐다고 했다. 섭섭한 표정의 그를 위로하느라 다산이 시를 지어주고 서문을 쓴 것이 ‘茶山詩文集(다산시문집)’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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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부분에 즐거움과 괴로움은 한 곳에서 나온다고 한 말이 나온다. ‘즐거움은 괴로움에서 나오니, 괴로움이란 즐거움의 뿌리다(樂生於苦 苦者樂之根也/ 낙생어고 고자락지근야), 괴로움은 즐거움에서 나오니 즐거움이란 괴로움의 씨앗이다(苦生於樂 樂者苦之種也/ 고생어락 낙자고지종야),\xa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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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로움과 즐거움이 서로 낳는 이치는 움직임과 고요함, 음과 양이 서로 그 뿌리가 되는 것과 같다(苦樂相生 如動靜陰陽 互爲其根/ 고락상생 여동정음양 호위기근).’ 그러면서 3년간이나 자주 찾아와 글을 써서 주고받는 즐거움이 있었는데 서글프지만 이후 고향에서 만나면 더욱 기쁠 수 있으니 슬퍼하지 말자고 다독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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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에 계속 즐거운 일만 계속되면 좋으련만 그런 행운은 있을 수 없다. 또 좋은 일이 계속되고 고통은 찾아오지 않으리라 기대하지만 그 즐거움이 비극이 될 수 있어 樂極生悲(낙극생비)라 했고, 흥함이 다하면 슬픔이 찾아온다고 興盡悲來(흥진비래)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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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苦盡甘來(고진감래)라 고생을 참으면 즐거움이 따른다. 현실이 괴롭다고 좌절할 일이 아니라 일상에서 작은 행복을 찾는 지혜가 필요하다. 부모 살아계시고 형제 탈이 없는 것이 三樂(삼락) 중에서도 으뜸으로 친 孟子(맹자)의 가르침을 생각할 일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