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려장高麗葬은 고려의 풍습일까 2편
■ 고려장(高麗葬)은 고려의 풍습일까 2편
기로국 설화든 원곡 이야기든 혹은 그 둘이 뒤섞인 것이든, 고려장(高麗葬) 이야기는 오래 전부터 민간에서 떠돌면서 살이 붙고 구체화되었다. 이를테면 “산을 파고 그 속에 기름불 하나 켜놓고 밥 한 사발 갖다 놓고 묻는다”거나, “밥 들어갈 만한 구멍 하나를 남겨서 한 달 동안 밥을 갖다 주다가 한 달이 지나면 문을 딱 닫는다”는 구전(口傳)도 있다. 아마 나병(癩病:한센병)같은 전염병에 걸린 사람을 격리시켜 살게 했던 풍습이 이야기에 반영된 것일 수도 있다.
고려장을 고려 때 실제 있었던 장례 풍습이라고 일반인들이 두루 믿게 된 것은 일제 강점기부터인 것으로 보인다. 삼국시대 이후로 조선시대까지 나온 역사책, 지리책, 수많은 문집 어디에서도 노인을 산 채로 버리는 고려장 이야기는 찾아볼 수가 없다. 반면, 일제시대에 어린 시절을 보냈거나 일제시대를 경험한 사람들은 고려장 이야기를 알고 있고, 자기 동네에 고려장했던 곳이라는 전설이 내려오는 바위나 굴이 있었다는 기억을 갖고 있기도 한 것을 보면, 일제시대에 고려장 이야기가 널리 보급되었음은 사실인 것 같다. 일제시대에 고려장 이야기를 보급하는 역할을 한 것은 놀랍게도 동화(童話)였다. 1919년 평양고보 교사를 지낸 적 있는 일본인 미와 다마끼(三輪環)가 《전설의 조선(傳說の朝鮮)》이란 책을 간행했는데, 여기에 ‘불효식자(不孝息子)’란 제목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이것이 현재까지 확인된 문헌에 남아 있는 최초의 고려장 이야기이다.
그보다 40여 년 전인 1882년, 미국인 그리피스의 저서 《은자(隱者)의 나라 한국》에 ‘고리장’에 대한 기록이 짤막하게 나오긴 하지만 구체적인 설명은 없다. 고려장 이야기 보급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은 1924년 조선총독부가 발간한 《조선동화집》이었다. 《조선동화집》은 비록 일본어로 쓰이긴 했어도 우리나라 최초의 전래동화집으로, 제목은 동화집이지만 전설이나 민담을 모아놓은 것이다. 여기에 실린 총 25편의 이야기 중 《어머니를 버린 남자(親を捨てる男)》’가 바로 고려장 이야기다.
『옛날 옛날 어느 시골 마을에 마음씨가 고약한 남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남자는 늙어서 몸이 약해진 어머니와 마음씨가 착한 아들과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중략)…· “집은 이처럼 가난한데 네 할머니는 조금도 일하지 않으니 어딘가 산속에 할머니를 버려두고 오려고 한다. 너는 지게에 할머니를 태워 와라.” …·(중략)…·오 리, 십 리를 가면서 길은 점점 산속으로 접어들어 두 사람은 인적이 없는 깊은 곳에 이르렀습니다. 남자는 어머니를 지게에서 내려놓았습니다. 어머니가 땅에 넘어지듯 엎어져 있는 것을 뒤로하고 남자는 그대로 아들과 함께 도망치듯 집으로 돌아오려고 하였습니다.…·(후략)…·』
《조선동화집》에 실린 이야기들은 다른 동화집에 그대로 혹은 약간 변형된 채 재수록되면서 확대 재생산되게 된다. 《어머니를 버린 남자》가 그 후에 나온 수많은 동화집에 그대로 옮겨 실리게 된 것이다.
- 3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