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곡공음空谷跫音 - 빈 골짜기에서 들리는 발자국 소리, 뜻밖의 즐거운 일이나 반가운 소식
공곡공음(空谷跫音) - 빈 골짜기에서 들리는 발자국 소리, 뜻밖의 즐거운 일이나 반가운 소식
빌 공(穴/3) 골 곡(谷/0) 발자국소리 공(足/6) 소리 음(音/0)
온갖 소리에 뒤섞여 살아가는 사람에게 가장 듣기 좋은 소리는 어떤 것일까. 저마다 내세울 수 있는 좋은 소리가 있겠지만 조선시대 해학집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한다. 문필로도 쟁쟁한 대신들이 주석에서 흥을 돋우다 가장 아름다운 소리는 무엇일까를 내세워보기로 했다.
모두들 달밤 누각에 구름 지나는 소리, 잠결에 듣는 아내의 술 거르는 소리, 초당에서 선비가 시 읊는 소리 등등 내세우는데 李恒福(이항복) 대감의 유머러스한 이야기에 자지러졌다. 근엄한 선비들의 뒤통수를 친 ‘아름다운 여인의 치마 벗는 소리(佳人解裙聲/ 가인해군성)’라 한 것이다.
寓言(우언)의 기지가 넘치는 ‘莊子(장자)’에 등장하는 소리도 보자. 텅 빈 골짜기(空谷)에서 저벅저벅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跫音)다. 空谷足音(공곡족음)이라 해도 같다. 기다리던 소식을 가져오는 사람의 기척이나 낯선 길에서 길을 잃었을 때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는 더 이상 기쁠 수가 없다.
이런 비유를 한 사람이 戰國時代(전국시대) 魏(위)나라의 은자 徐無鬼(서무귀)라면 더 그럴듯하다. 재상 女商(여상)을 통해 武侯(무후)를 만난 서무귀는 산속에서 홀로 사는 것이 힘들겠다고 하는 임금에게 도로 위로해 드려야 한다면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대화가 끝날 때 무후가 크게 기뻐하면서 웃었다.
자리에서 나온 서무귀에게 재상 여상이 다가갔다. 자신은 詩書禮樂(시서예악)에 대해 말하고 공도 많이 세웠는데도 웃지 않은 임금이 어떻게 파안대소했는지 궁금해 했다. 서무귀는 자기 나라를 떠난 사람이 오래 될수록 고향을 더 생각하고 비슷한 사람만 만나도 반가운 법이라며 비유하여 말한다.
‘사람의 발자국 소리를 듣기만 해도 기쁨이 얼마나 크겠소(聞人足音 跫然而喜矣/ 문인족음 공연이희의)?’ 서무귀는 임금이 인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외롭게 지내는 것과 같이 곁에서 마음속에 닿는 진실한 이야기를 많이 듣지 못한 것 같다고 말한 것이다.
반드시 귀로 듣는 것만이 소리가 아니라고 말한 사람이 있다. 피부로 느끼고 마음으로 깨달을 수 있는 것도 모두 소리란 것이다. 세상에는 듣기 좋은 이러한 소리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해도 소음이 너무 많다.
서로 자기가 잘 났다고, 자기만 옳다고 하며 조금도 양보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이전투구하는 정치권일수록 더하다. 빈 골짜기에서 들려오는 반가운 발자국 소리처럼 남을 위해 양보할 줄 알고 인격수양이 잘 된 사람의 목소리가 더 크게 울렸으면 좋겠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