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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24일 일요일

공민왕과 신돈 2편

■공민왕과 신돈 2편

■공민왕과 신돈 2편

신돈의 개혁 중 상당히 의외의 개혁이 있다. 신돈은 승려였지만 의외로 신진 유학 세력을 등장시키고 과거제도를 개선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신돈은 원 침략시기에 불탄 성균관 건물을 복구하고 100명의 유생을 두었다. 성균관을 재건하고 나서 이색을 성균관 총 관리자인 대사성으로, 정몽주를 교육 책임자인 박사로, 이숭인 등을 학관으로 삼았다. 이들은 당시 비교적 온건한 유학자들이었다. 신진 유학자들은 성균관을 이끌면서 새로운 학풍을 일으키고 유생들에게 성리학을 체계 있게 교육시켜 다음 세대를 이끌 지도자로 키웠다.

벼슬아치의 승진에는 순자(循資)의 자격법을 썼다. 벼슬을 받아 오래 근무한 사람에게는 시험을 봐서 먼저 승진할 수 있게 해 주는 제도였다. 이 제도를 도입해 지금까지 어진 사람에게 요직을 맡긴다는 명분으로 권문세가들이 순서를 뛰어넘어 자신들의 동료나 자제들을 끌어 주고 승진시켜 온 관례를 막았다.

1369년에는 과거제를 개정하여 향시(鄕試) · 회시(會試) · 전시(殿試) 세 단계로 설정해 관리 시험을 치르게 했다. 향시를 통과한 응시자들을 대상으로 임금이 직접 참여해 시험 내용을 검토하고 합격자를 뽑았다. 그동안에는 감독으로 나간 시험 담당 관리들이 부정으로 응시자를 합격시키기 일쑤였다. 이렇게 하여 좌주와 문생들이 결탁해 부정으로 합격자를 내는 폐단이 사라졌다. 권문세가와 공신 자제들에게 베풀었던 벼슬길의 특혜도 없앴다. 오직 과거를 통해서만 벼슬길에 오르게 한 것이다. 과거제 개정은 기득권 세력의 팔다리를 자른 획기적인 조치였지만 그런 만큼 반발도 거셌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조선 건국의 주체세력인 신진 사대부들은 이 개정된 과거제를 통해 성장할 수 있었다.

6년쯤 추진된 공민왕과 신돈의 개혁정치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물론 조정에는 신돈을 추종하는 인물이 꽉 들어차 있었다. 하지만 신돈 자신의 행실에 꼬투리가 잡혔다. 신돈은 여자를 너무 좋아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비록 고려 말 기록이 상당히 과장되어 있고 그 내용들이 사실인지 어쩐지는 모르겠지만 신돈은 틈만 나면 여자와 정을 통했다고 적혀있다. 게다가 신돈이 어느 정도 권력을 축적하자, 사람들이 뇌물을 주면 처음과는 달리 재물을 받아 쌓았다고도 한다. 기득권 세력은 신돈의 이러한 부적절한 행실의 틈을 파고들어 공민왕과 이간질 시켰다. 이에 공민왕은 점점 신돈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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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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