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저복통官猪腹痛 - 관가 돼지 배 앓는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다, 혼자 끙끙 앓다.
관저복통(官猪腹痛) - 관가 돼지 배 앓는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다, 혼자 끙끙 앓다.
벼슬 관(宀/5) 돼지 저(犭/9) 배 복(肉/9) 아플 통(疒/7)
‘군자는 허물을 자신에게서 구하고, 소인은 허물을 남에게서 구한다(君子求諸己 小人求諸人/ 군자구저기 소인구저인)’란 말이 있다. 論語(논어) 衛靈公(위령공)편에 있는 孔子(공자)님 말씀이다. 일이 잘못 되었을 때 원인을 밝혀 책임을 지면 좋으련만 대부분 ‘잘 되면 제 탓, 못되면 조상 탓’이라며 도무지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우리가 흔히 인용하는 서양 속담 ‘모두의 책임은 아무의 책임도 아니다’도 의미가 비슷하다. 책임을 명확히 나눠 지우지 않고 분산되면 아무도 일을 하지 않는다.
어떤 일에 관계된 사람이 많으면 내가 아니라도 누가 하겠지 하며 서로 믿고 미루다가 결국 그르치게 된다. 적합한 속담이 ‘주인 많은 나그네 밥 굶는다’이다. 저 사람이 설마 해 주겠지 하고 내 미락 네 미락하다 보면 아무도 밥을 해 주지 않게 된다는 뜻이다. 뜻이 통하는 속담으로 ‘관가 돼지(官猪) 배 앓는다(腹痛)’란 것이 있다.
관청에서 기르는 돼지는 먹을 것이 풍부하고 하인도 많아 신경 쓸 일이 적다. 배가 아파서 꿀꿀대도 다른 하인이 돌보겠지 미루는 통에 돼지만 죽어난다. 여기에서 자기와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라고 무시하거나 또는 근심이 있어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이 혼자 끙끙 앓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 됐다.
속담을 번역한 성어라 첫 출전은 아니라도 제법 인용된 곳이 눈에 띈다. ‘承政院日記(승정원일기)’의 仁祖(인조) 편에는 관가에 납입되는 方物(방물) 갑옷이 제 물건이 아니라고 누구도 기름칠을 하지 않아 유사시에 쓰려면 성한 것이 하나도 없다면서 이 속담을 썼다.
조선 후기의 문신 趙曮(조엄, 1719~1777, 曮은 해다닐 엄)이 통신정사로 일본에 다녀오면서 기록한 ‘海槎日記(해사일기, 槎는 뗏목 사)’에도 양국 간에 주고받았던 예물의 품목과 수량을 기록한 禮單(예단)에서 앞의 기록이 부실하다고 한탄한다. ‘이는 실로 전후에 온 사람들이 돌아간 뒤에는 마치 관청 돼지 배앓이를 보듯 하여 뒤에 올 사람을 깨우쳐 주지 않는 것이다(實由於前後之人 歸後視如官猪腹痛/ 실유어전후지인 귀후시여관저복통).’
거창한 계획을 세우고서 예산을 흥청망청 쓴다. 내 돈이 아니라 나랏돈이니 주인이 없고, 먼저 보는 사람이 임자다. 뒤에 감사가 나와 세심히 따져 본다고 해도 원님 떠난 뒤 나팔이다. 국책사업이나 한번 책정되면 손을 못 댄다는 복지사업에도 손이 모자라 새는 일이 부지기수다. 모두의 책임이 아니라 나의 책임이라는 의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