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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13일 수요일

교외별전敎外別傳 - 말이나 글에 의하지 않고 마음으로 전하는 진리

교외별전敎外別傳 - 말이나 글에 의하지 않고 마음으로 전하는 진리

교외별전(敎外別傳) - 말이나 글에 의하지 않고 마음으로 전하는 진리

가르칠 교(攵/7) 바깥 외(夕/2) 다를 별(刂/5) 전할 전(亻/11)

배움과 깨달음을 얻는 데는 三知(삼지)라 하여 세 단계를 든다. 태어날 때부터 알고 스스로 깨달음에 이르는 것이 生而知之(생이지지)다. 성인이 아닌 보통 사람들은 배워서 깨달음을 아는 學而知之(학이지지)를 하고, 막다른 곳에 이르러 어쩔 수없이 배워야 하는 困而知之(곤이지지)라도 해야 한다. 孔子(공자)는 곤경에 처해서도 배우지 않는 사람은 困而不學(곤이불학)이라 하여 하급으로 쳤다. 날 때부터 알면 더없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배움을 멀리 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이와 통하는 이야기로 가르침을 받지 않고도 마음으로 알아듣는다는 말이 많다. 불교도들에게 친숙한 不立文字(불립문자)나 以心傳心(이심전심) 등이다. 말이나 글의 가르침에 의하지 않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달된다는 뜻이다.

불자의 집에서 흔히 접하는 直指人心(직지인심) 見性成佛(견성성불)도 사람의 마음을 직관하여 본래의 성품을 깨닫고 釋迦(석가)의 비법을 알게 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부처님이 연꽃송이를 집어 올렸을 때 迦葉(가섭, 葉은 잎 엽 또는 고을이름 섭)만이 알아듣고 활짝 웃은 拈華微笑(염화미소)가 흥미를 끈다. 직접적인 가르침 외(敎外)의 방법으로 깨달음을 이어받는(別傳) 이 성어도 여기서 나왔다.

이 재미있는 고사는 의외로 초기 불교관련 서적에는 나타나지 않고 11세기 宋(송)나라 이후 등장한다고 한다. 達磨(달마)대사에게서 전해진 불교 禪宗(선종)은 어떤 경전의 문구에도 의지하지 않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진수가 전해진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이야기로만 전해지던 가섭의 미소가 송의 悟明(오명)이 1183년 편찬한 ‘聯燈會要(연등회요)’ 이후부터 자주 사용되었다고 전한다.

세존은 가섭에게 지혜의 눈과 깨달음의 불심, 불변의 진리와 깨치는 마음을 ‘언어와 경전에 따르지 않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지는 것과 함께 전한다(不立文字 教外別傳 付囑摩訶迦葉/ 불립문자 교외별전 부촉마가가엽)’고 했다.

오묘한 불교의 진리를 배우지 못한 일반 사람들이 알 수는 없다. 그렇더라도 경전을 경시하라는 것은 아닐 것이다. 문자 없이 마음으로 구도를 통해서 전한다고 해서 올바른 진리가 오롯이 전해질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일반 사회에서도 가르침을 받지 않고서 깨우칠 수 있다면 그 이상 좋을 수는 없다. 그러하지 못하니 일상에서 부딪치는 여러 문제들을 푸는 해법들이 내려온다. 실패한 것에서 그것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기록한 매뉴얼이다. 큰소리치다 일을 그르치는 것보다 이전의 가르침이 더 나을 때도 있는 법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