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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20일 수요일

구년지축九年之蓄 - 구년 동안 먹고 살 수 있는 식량 

구년지축九年之蓄 - 구년 동안 먹고 살 수 있는 식량 

구년지축(九年之蓄) - 구년 동안 먹고 살 수 있는 식량\xa0

아홉 구(乙/1) 해 년(干/3) 갈 지(丿/3) 모을 축(艹/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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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衣食住(의식주)를 구하기 위해서는 재물이 필요하다. 초야에 묻혀 재물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는 고아한 隱者(은자)도 물만 마시고서는 살 수 없다. 만금을 쌓아 놓고 주위에 떵떵거리며 사는 부자를 욕하면서도 속으로는 부러워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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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있으면 편리하다. ‘날개 없이 날 수도 있고, 다리 없이 달릴 수도 있다(無翼而飛 無足而走/ 무익이비 무족이주).’ 물신주의를 풍자한 중국 錢神論(전신론)에 나온다. 유교의 사서 大學(대학)에서도 인정한다. ‘부유함은 집안을 윤택하게 하고, 덕은 몸을 빛나게 한다(富潤屋 德潤身/ 부윤옥 덕윤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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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산이 넉넉하면 개인이나 나라나 여유롭게 지낼 수 있다. 백성을 잘 먹이고 잘 입히고 안온한 집에서 살게 하는 것이 나라가 존재하는 이유다. 그렇게 하려면 전체를 움직일 돈, 예산이 든다. 중국의 문물제도와 의례의 근본정신을 담은 ‘禮記(예기)’에 구년 동안(九年) 먹고 살 수 있게 저축(之蓄)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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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 오경에 드는 이 책의 王制(왕제)편에서인데 고대 聖王(성왕)들이 천하를 경륜하던 제도를 모은 곳이다. 흉년이나 홍수, 전쟁 등 비상상황을 맞았을 때라도 나라가 계속 유지되려면 최소한 이 정도의 비축이 있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九年之儲(구년지저)라 해도 같다. 儲는 쌓을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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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어 부분의 내용을 보자. ‘나라에 구년의 저축이 없으면 부족이라 하고(國無九年之蓄 曰不足/ 국무구년지축 왈부족), 육년의 저축이 없으면 급이라 부르며(無六年之蓄 曰急/ 무육년지축 왈급), 삼년의 저축도 없으면 나라가 그 나라의 나라가 아니다(無三年之蓄 曰國非其國也/ 무삼년지축왈 국비기국야).’ 그러면서 3년의 경작이 있어야 1년 식량의 저축이 있고, 9년을 경작해야 3년의 식량을 저축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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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동안 먹고 살만한 식량의 비축이 없다면 나라는 경제적인 위기에 봉착하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다른 나라의 침략을 받아 와해되기 쉽다고 했다. 결국 튼튼한 재정이 나라를 존속시키는 근본이란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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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서도 朝鮮王朝實錄(조선왕조실록)의 太宗(태종)조에 처음 나오고 다른 문집에서도 많이 인용하고 있다. ‘나라에 삼년의 저축이 없는데(國無三年之蓄/ 국무삼년지축)’ 급하지 않은 토목공사를 일으켜서는 도가 아니라는 간관의 진언이 있자 태종이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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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의 기틀을 갖춘 이때부터 경제의 중요성을 알았던 셈이다. ‘부잣집이 망해도 삼 년을 간다’는 속담이 있다. 부자였더라도 흥청망청 낭비하면 3년은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이다. 나라는 부잣집과 달리 계속돼야 한다. 오늘 재산이 국부가 제법 탄탄하다고 마구 퍼주다가 후일 쪽박 찬 나라의 뒤를 따라서는 안 될 일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