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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31일 일요일

국혼國婚 2편

■ 국혼國婚 2편

■ 국혼(國婚) 2편

혼례식에서는 왕실의 화려함과 함께 위엄을 돋보이게 하는 각종 도구들이 활용되었는데, 의장 깃발에는 해·달·산천을 비롯해 사신도에 표현된 동물, 가구선인(駕龜仙人) 등의 그림을 그려넣어 왕실의 위엄을 더했다. 의장물은 시각적인 것과 악기와 같은 청각적인 것으로 구분할 수 있다. 시각적인 것은 창·칼·도끼 등과 같은 군사적인 힘을 상징하는 것과, 그늘을 만들어주는 실용성과 신선들이 주로 사용했다는 상징성을 겸비한 부채인 선(扇)·양산(陽橵)·개(蓋) 등이 활용되었다. 악기는 축제 분위기를 조성하고, 행렬의 앞뒤의 동작을 일치시켜주는 기능을 하기도 했다. 오늘날 구령붙이는 것과 같은 기능을 했을 것이다.

왕비는 별궁에서 조선시대 최고 신분의 여성을 상징하는 복식 적의(翟衣)를 입고 무릎을 꿇은 상태에서 왕의 책봉문을 받았다. 책비(冊妃) 이후에는 상궁과 궁녀들이 왕비에게 대궐 안주인에 대한 예를 차려 네 번의 절을 올렸다. 이때부터 왕비로 인정되는 것이다. 이날 왕은 최고의 예복인 면류관(冕旒冠)에 곤복(袞服), 상(裳), 중단(中單), 폐슬(蔽膝), 혁피, 패옥, 말석, 규(圭) 등으로 구성된 구장복(九章服)을 입었다.

왕과 왕비도 최고의 복식을 입었을 뿐만 아니라, 이들을 수행하는 행렬의 모습도 화려했다. 의례복은 형태나 색채가 화려하고 독특한 개성이 나타났고, 일부 여성들은 너울과 같은 가리개를 착용했다. 행렬에는 화려하게 장식된 백마를 비롯해 흑마·갈색마 등 다양한 색깔을 띤 말의 모습도 보인다.

대궐로 들어온 왕비는 그날 저녁에 왕과 함께 술과 음식을 들고 침전에서 첫날밤을 치르는 절차를 거친다. 왕은 대궐의 침전 문까지 나와 왕비를 맞이한 다음 침전의 중앙 계단을 통해 음식상이 차려진 방으로 갔다. 왕과 왕비는 하나의 박을 쪼개어 만든 잔으로 석 잔의 술을 마신 후 왕의 침전에서 첫날밤을 보냈다.

여기까지 진행되면 국왕의 혼례 절차는 사실상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후 왕비에게는 대비나 왕대비 등 왕실 어른들을 뵙고 인사하고, 조정백관과 내·외명부의 여성들로부터 인사를 받는 절차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왕비가 정해진 후에 왕은 중국 황제에게 왕비 책봉을 요청하였다. 조선의 왕비는 중국 황제가 보내준 고명(誥命)을 받음으로써 국내외적으로 지위가 공인되었으며, 국왕혼례도 완결되었다.

혼례가 끝난 후 왕비의 친정에는 당연히 많은 혜택이 주어지는데, 왕비의 아버지는 부원군(府院君)에 봉해지고, 어머니는 부부인(府夫人)으로 봉해지게 된다. 그리고 왕비의 본향은 행정단위를 승격 시켜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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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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