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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27일 수요일

궁인宮人 기씨 원의 황후가 되다 1편

■ 궁인宮人 기씨 원의 황후가 되다 1편

■ 궁인(宮人) 기씨 원의 황후가 되다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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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기황후라는 드라마가 인기리에 방영되어 우리 귀에 낯설지 않은 이름으로 남아있다. 고려 말 원나라의 세력을 등에 업고 하늘을 찌르는 권세를 누리던 기씨 일족! 그 뒤에는 기황후가 있었다. 시호는 보현숙성황후(普顯淑聖皇后). 따라서 정확한 공식 명칭은 보현숙성황후 기씨(普顯淑聖皇后 奇氏)라고 해야 하지만, 기씨 성을 가진 황후였다고 해서 줄여서 기황후라고 불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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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출신으로 본관은 행주(幸州), 고려 말의 친원 세력인 권신 기철(奇轍)의 누이동생이며 원나라 황제 소종(昭宗)의 어머니이다. 아버지는 기자오이며, 외할아버지는 이행검(李行儉)이다. 오빠가 5명, 언니가 2명이었는데 그 중 한 명이 기철. 그녀의 고려 식 본명은 알려진 바 없으나 기 솔롱고 올제이후투그(Gi Solongo Öljei Khutugh, 奇 肅良合 完者忽都)라는 몽골식 이름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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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를 지배하게 된 원나라는 고려에 ‘공물(貢物)’과 함께 공녀(貢女)를 요구했다. 원나라에 항복한 귀순병들에게 배우자를 마련해준다는 구실로 공녀 1천 명을 요구한 것을 시작으로 근 1세기에 걸쳐 수많은 고려 처녀들을 데려가 궁녀나 노예로 삼았다. 원은 주로 13세에서 16세까지의 처녀들을 바칠 것을 요구했다. 그러자 이 나이 또래의 딸을 가진 집안에서는 딸이 공녀로 끌려가는 것을 막기 위해 머리를 깎아 출가시키거나 얼굴에 일부러 화상자국을 만들기도 하였으며, 어린 나이에 혼인을 시키기도 했다. 우리나라에 조혼(早婚)하는 풍습이 생겨나게 된 이유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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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에 끌려간 공녀들은 대부분 황제·황부(여자 황제의 남편)·황족(황제의 친척)들의 시녀로 들어가 힘겨운 생활을 했고, 그 가운데 일부는 운 좋게 지배층의 눈에 띄어 아내나 첩이 되기도 했다. 고려인 기자오(奇子敖)의 막내딸이 원나라에 공녀로 가게 되었을 때, 다른 공녀들처럼 이 길을 죽음의 길로 생각했고, 많은 사람들은 그녀의 불행을 동정했다. 그러나 기씨 처녀는 피할 수 없다면 마냥 울고 있지만은 않으리라고 당찬 결심을 했다. 비록 자원한 길은 아니지만 이왕 이리 된 이상 인생의 새로운 전기로 삼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세계를 지배하는 원나라이므로 더 많은 기회가 있으리라고 판단했다.

원나라는 공녀만을 요구한 것이 아니고, 충렬왕의 비(妃) ‘제국대장공주’가 자신의 부친인 세조(쿠빌라이)에게 환관 몇 명을 바친 것을 계기로 고려인들이 영특하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원나라에서는 여러 차례 환관(宦官)들도 요구했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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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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