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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9일 화요일

궁중음식의 유래

■ 궁중음식의 유래

■ 궁중음식의 유래

1. 설렁탕

설렁탕은 원래 ‘선농탕’이라고 불렀다. ‘선농단에서 먹는 국’이라는 뜻이다. 고려와 조선은 매년 경칩 이후 해일(亥日)에 ‘선농단(先農壇)’에서 농사의 신인 ‘선농씨’를 기리며 풍년을 기원하는 ‘선농제(先農祭)’를 지냈다. 제사는 임금이 직접 주관했고, 여러 신하들과 밭을 가는 ‘친경례(親耕禮)’를 했다. 이때 소와 돼지를 잡아 통째로 상에 올렸고, 제사가 끝난 뒤에는 문무백관과 백성들까지 모두 나눠 먹었는데, 큰 솥에 국을 끓여 밥을 말아 준 것이 오늘날의 설렁탕이 됐다는 것이다. 선농제를 지내고 선농탕을 백성들에게 나눠 주는 이 행사는 조선의 마지막 황제인 순종 3년(1909년)에 일제에 의해 폐지되었다.

2. 청국장

청국장은 ‘청(淸)나라에서 온 된장국’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은데, 이는 잘못된 내용이다. 청국장은 단기 숙성해서 먹는 장이다. 보통 여섯 달 이상 걸리는 일반 된장과 달리 2~3일이면 먹을 수 있다. 그래서 ‘전국장’이라고 불렀다. ‘전쟁 중에도 급히 만들어 먹을 수 있는 된장국’이라는 의미이다. 청국장의 ‘청’은 청나라 ‘청(淸)’이 아니라 푸른곰팡이 ‘청(靑)’이다.

우리 역사 속에서 단기 속성 장류를 부르는 이름은 ‘고려장’ ‘염시’ ‘시’ ‘책성시’ 등으로 다양하다. 고려장은 고구려가 부르던 이름이고, 염시와 시는 신라, 책성시는 발해가 부르던 청국장의 이름이다. 《삼국사기》에는 문무왕이 웅진도독부로 물자를 지원할 때 『길이 막혀 염시를 보낼 수가 없다』는 기록이 있고, 고려장과 책성시에 대한 기록은 『고려사절요』에도 나와 있다. 그만큼 유래가 오래됐다는 이야기이므로, 청나라에서 왔다는 것은 큰 오류인 것이다.

3. 탕평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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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21대 임금인 영조는 궁중 나인 중에서도 가장 밑바닥인 무수리의 몸에서 태어났다. 적장자 혈통을 중시했던 조선 사회에서 형인 경종을 독살하고 왕위에 올랐다는 정통성 시비도 늘 그를 따라다녔다. 이러한 그의 콤플렉스는 당쟁의 소재가 되기도 했고, 그 와중에 아들인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둬 죽이는 일까지 발생했다. 아들인 사도세자가 소론과 함께 자신의 자리를 넘본다는 노론들의 모략으로 인한 오해 때문이었다. 영조가 뒤늦은 후회와 함께 당파에 관계없이 인재를 등용하고 분열을 종식하자는 의미로 탕평책을 펴게 되는데, 이 때 조정 대신들에게 내놓은 음식이 ‘탕평채’이다. ‘탕평’이란 이름은 ‘서경’에 나오는 ‘왕도탕탕 왕도평평(王道蕩蕩 王道平平)’에서 따온 것이다. 탕평채는 녹두로 만든 흰색의 묵과 붉은 색의 볶은 고기, 푸른 미나리, 검은색의 김으로 이뤄진 재료를 모두 섞어서 먹는 음식이다. 조선시대 4개 붕당으로 나뉜 서인, 남인, 동인, 북인을 대표하는 색을 띠고 있다. 영조가 탕평채를 내놓을 때 집권세력이 서인이어서 흰색 청포묵이 주재료가 됐다고 한다. 영조는 ‘탕평채’라는 음식을 만들어 신하들에게 하사함으로써 붕당 간의 정치 보복과 숙청의 피바람을 끝내고, 당파싸움을 그만하자는 그의 간절한 바램을 공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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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