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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1일 월요일

귀성군 이준과 남이장군 3편

■ 귀성군 이준과 남이장군 3편

■ 귀성군 이준과 남이장군 3편

유자광이 남이장군 밑에서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는 데 큰 공을 세웠는데도 모든 공이 남이에게만 돌아가는 것에 불만이 많았다. 유자광은 예종은 물론 한명회, 신숙주 등 훈신세력들이 자기와 생각이 같음을 간파하고 있었지만, 자신이 서얼출신인 만큼 특별한 계기가 없으면 더 이상 출세하기 힘들다고 판단했다. 그런 유자광에게 기회가 왔다.

남이가 어느 날 유자광의 집에 와서 “혜성이 없어지지 않는데, 광망(光芒: 혜성의 꼬리)이 희면 두 해에 걸쳐 반역이 있다. 그러니 내가 미리 선수를 치려 한다” 는 말을 했다고 고변(告變)한다. 다른 이야기로는 유자광이 남이 집에 가서 엿들었다 고도 전해진다. 어쨌든 유자광은 곧 바로 남이가 역모를 꾀하고 있다고 고변하고, 남이가 백두산에서 지었다는 시(詩)를 그 증거로 들이댔다.

유자광은 ‘男兒二十未平國(사나이 스물에 나라를 평정하지 못하면)’을 ‘男兒二十未得國 (사나이 스물에 나라를 얻지 못하면)’ 으로 고쳐서 보고 했다. 고문을 못이긴 남이는 이시애의 난 평정 때의 대장이자 당시의 영의정인 강순을 같은 공범으로 지목하고 자백하여 함께 사형 선고를 받았다.

남문 처형장으로 가는 수레에서 강순이 남이에게 "왜 나를 억울하게 죽게 하느냐" 고 묻자, 남이는 "당신은 영의정 자리에 있고 나이 80으로 함께 평정을 간 부하의 억울함을 보고도 몸을 사려 한마디 변호도 하지 않은 불의를 범해 죽어 마땅하다" 고 하였다. 강순의 아내와 자제들도 죽음을 당하고, 가산은 몰수되었다. 남이는 젊은 나이에 원통하게 죽었지만 오늘날 우리 무속신앙에서는 장군신령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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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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