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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24일 일요일

수수방관袖手傍觀 - 팔짱을 끼고 옆에서 보다, 그대로 버려두다.

수수방관袖手傍觀 - 팔짱을 끼고 옆에서 보다, 그대로 버려두다.

수수방관(袖手傍觀) - 팔짱을 끼고 옆에서 보다, 그대로 버려두다.

소매 수(衣/5) 손 수(手/0) 곁 방(亻/10) 볼 관(見/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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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서 큰 일이 벌어졌는데 내가 상관할 일이 아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알 필요도 없는 일이다. 자기에게 관계없는 일인데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지 않는 사람은 드물다. 점잖은 사람이라도 도덕적인 일보다 흥미로운 일에 더 관심을 가진다는 ‘남의 집 불구경 않는 군자 없다’는 속담까지 있는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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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을 가져야 할 일인데도 전혀 그 일에 상관하지 않겠다는 吾不關焉(오불관언)이나 너는 너 할대로 하고 나는 나 할대로 하겠다는 爾爲爾 我爲我(이위이 아위아, 爾는 너 이)와 뜻이 통하는 성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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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소매 속에 넣고(袖手) 옆에서 보고만 있다(傍觀)는 이 말도 나서야 할 때 나서지 않고 구경만 하고 있는 것을 말한다. 요즘의 옷이야 소매가 좁아 손이 잘 들어가지 않지만 옛날 한복은 주머니가 없고 저고리 품이 풍성했다. 물건을 넣거나 손이 시릴 때는 주머니 역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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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생각 없이 습관적으로 팔짱끼듯이 소매 속으로 팔을 넣기도 하는데 점잔을 떠는 행위이기도 했다. 이렇게 하면 남의 급한 일을 도와줄 수가 없다. 간섭하거나 거들지 아니하고 그대로 버려둠을 이르는 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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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성어는 일상에서 많이 사용되고 우리 고전에서도 비유한 것이 많이 나온다. 그래도 먼저 나타나는 곳은 唐(당)나라의 유명한 문학자이자 사상가 韓愈(한유, 768~824)의 글이라 본다. 문체개혁을 함께 했던 친구 柳宗元(유종원)이 먼저 죽었을 때 지은 ‘祭柳子厚文(제유자후문)’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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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의 자는 退之(퇴지), 유종원의 자가 子厚(자후)다. 부분을 보자. ‘나무를 잘 베지 못하는 사람은 손가락에서 피가 나고 얼굴에 땀이 범벅이 되는데(不善爲斫 血指汗斫/ 불선위작 혈지한작), 나무를 잘 베는 장인은 오히려 옆에서 쳐다보며 손을 거둬 옷소매 속에 넣고 있다(巧匠旁觀 縮手袖間/ 교장방관 축수수간).’ 유종원의 명문장이 널리 알려지기 전 떠난 것을 애달파하고 있다. 斫은 쪼갤 작, 旁은 곁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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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세상, 남에게 신경 쓸 여유도 없는 오늘날 이웃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고 지나는 경우가 많다. 죽은 지 며칠 만에 밝혀지는 고독사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런 중에도 화재사실을 알리고 목숨을 잃거나 위험천만한 교통사고 현장에서 내 일같이 적극 돕는 의인이 나타난다. 직접 상관이 없다고 팽개치면 남도 자기를 똑 같이 대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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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6일 수요일

수수방관袖手傍觀 - 팔짱을 끼고 옆에서 보다, 그대로 버려두다.

수수방관袖手傍觀 - 팔짱을 끼고 옆에서 보다, 그대로 버려두다.

수수방관(袖手傍觀) - 팔짱을 끼고 옆에서 보다, 그대로 버려두다.

소매 수(衣/5) 손 수(手/0) 곁 방(亻/10) 볼 관(見/18)

옆에서 큰 일이 벌어졌는데 내가 상관할 일이 아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알 필요도 없는 일이다. 자기에게 관계없는 일인데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지 않는 사람은 드물다. 점잖은 사람이라도 도덕적인 일보다 흥미로운 일에 더 관심을 가진다는 ‘남의 집 불구경 않는 군자 없다’는 속담까지 있는 판이다. 관심을 가져야 할 일인데도 전혀 그 일에 상관하지 않겠다는 吾不關焉(오불관언)이나 너는 너 할대로 하고 나는 나 할대로 하겠다는 爾爲爾 我爲我(이위이 아위아, 爾는 너 이)와 뜻이 통하는 성어다.

손을 소매 속에 넣고(袖手) 옆에서 보고만 있다(傍觀)는 이 말도 나서야 할 때 나서지 않고 구경만 하고 있는 것을 말한다. 요즘의 옷이야 소매가 좁아 손이 잘 들어가지 않지만 옛날 한복은 주머니가 없고 저고리 품이 풍성했다. 물건을 넣거나 손이 시릴 때는 주머니 역할도 했다. 아무 생각 없이 습관적으로 팔짱끼듯이 소매 속으로 팔을 넣기도 하는데 점잔을 떠는 행위이기도 했다. 이렇게 하면 남의 급한 일을 도와줄 수가 없다. 간섭하거나 거들지 아니하고 그대로 버려둠을 이르는 말이 됐다.

이 성어는 일상에서 많이 사용되고 우리 고전에서도 비유한 것이 많이 나온다. 그래도 먼저 나타나는 곳은 唐(당)나라의 유명한 문학자이자 사상가 韓愈(한유, 768~824)의 글이라 본다. 문체개혁을 함께 했던 친구 柳宗元(유종원)이 먼저 죽었을 때 지은 ‘祭柳子厚文(제유자후문)’에서다. 한유의 자는 退之(퇴지), 유종원의 자가 子厚(자후)다. 부분을 보자. ‘나무를 잘 베지 못하는 사람은 손가락에서 피가 나고 얼굴에 땀이 범벅이 되는데(不善爲斫 血指汗斫/ 불선위작 혈지한작), 나무를 잘 베는 장인은 오히려 옆에서 쳐다보며 손을 거둬 옷소매 속에 넣고 있다(巧匠旁觀 縮手袖間/ 교장방관 축수수간).’ 유종원의 명문장이 널리 알려지기 전 떠난 것을 애달파하고 있다. 斫은 쪼갤 작, 旁은 곁 방.

복잡한 세상, 남에게 신경 쓸 여유도 없는 오늘날 이웃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고 지나는 경우가 많다. 죽은 지 며칠 만에 밝혀지는 고독사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런 중에도 화재사실을 알리고 목숨을 잃거나 위험천만한 교통사고 현장에서 내 일같이 적극 돕는 의인이 나타난다. 직접 상관이 없다고 팽개치면 남도 자기를 똑 같이 대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