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극한직업 조선의 왕비 3편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극한직업 조선의 왕비 3편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24년 3월 31일 일요일

극한직업 조선의 왕비 3편

■ 극한직업 조선의 왕비 3편

■ 극한직업 조선의 왕비 3편

1910년 한일합방에 이르기까지 무려 27명의 왕이 있었다. 왕후의 자리에 오른 여성은 41명이나 되었는데, 국모의 자리에 올라 국민의 사랑을 받았지만 개개인의 인생은 대부분 불행했다. 현덕왕후 권씨가 24세, 정현황후는 18세, 효현왕후 김씨와 장순왕후 한씨는 1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60세 이상 수명을 다한 왕후는 정순왕후 송씨가 81세, 신정왕후 조씨가 83세, 순정효황후 윤씨가 73세 등 14명에 불과했다.

왕비가 된 후 정변으로 폐위되는 경우도 많았다. 세조의 집권으로 단종이 왕위에서 물러나 귀양을 가는 바람에 폐비가 된 정순왕 후는, 현재의 서울 종로구 창신동 인근에서 옷감에 물들이는 일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했다. 폐위된 지 230여년 만인 숙종 대에 복권되기는 했지만, 20대 이후의 전 생애를 일반인으로 살아갔던 정순왕후의 삶은 무척이나 힘들었을 것이다.

연산군과 광해군의 폐위로 폐비가 된 신씨와 유씨의 삶도 남편의 몰락과 함께 참담함을 거듭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연산군과 폐비 신씨, 광해군과 폐비 유씨는 사후에 남편과 함께 묻히게 된 점이다. 현재 서울 도봉구 방학동의 연산군 묘와 경기 남양주의 광해군 묘에는 왕과 왕비의 무덤이 쌍릉 형식으로 조성돼 있다.

왕비는 권력과 부가 보장되는 지위가 아니라, 답답한 구중궁궐에서 왕의 내조에 전념하는 여성으로서의 역할을 더 많이 요구받았다. 왕비의 침전인 교태전 뒤에 인공적으로 조성한 아미산(峨嵋山)과 궁궐 후원을 산책하거나, 궁궐 안에서 독서를 하는 것 정도가 왕비의 유일한 여가활동이었다. ‘왕의 조력자’로서의 역할 수행과 후계자 생산이라는 막중한 책임은 물론,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내·외명부의 수장(首長)으로서의 무게가 엄청났으리라. 자유도 없고 형식과 절차에 얽매인 답답한 궁중생활이 결코 녹녹치는 않았으리라.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이는 조선 왕비의 모습은 화려하다. 우아한 자태와 미모, 여기에 더해 화려한 궁중 복식까지 갖춰 입었으니 모든 여성의 선망의 대상이 될 법도 하다. 하지만, 어쩌면 조선의 왕비는 엄격한 궁중에서 틀에 박힌 일상을 살아가는 극한직업을 가진 존재였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일반 서민으로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는 작은 행복이 얼마나 소중 한 지를 새삼 깨닫을 수 있지 않을까.

"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