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낭가구錦囊佳句 - 비단 주머니 속의 아름다운 시구
금낭가구(錦囊佳句) - 비단 주머니 속의 아름다운 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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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 금(金/8) 주머니 낭(口/19) 아름다울 가(亻/6) 글귀 구(口/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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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부의 재능을 지닌 예술가는 작품의 구상이 술술 나올까. 태양이 없을 때 창조하는 역할은 예술가의 몫이라 예찬한 사람이 있고 일필휘지하는 천재도 드물지만 당연히 있다. 하지만 창작의 고통이란 말이 따르니 대부분은 오랜 과정을 거치며 또 보통사람과는 다른 습벽을 지닌 기인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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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 주머니(錦囊) 안에 있는 아름다운 시구(佳句)를 말하는 이 성어는 중국 唐(당)나라의 천재 시인 李賀(이하, 791~817)의 버릇에서 나왔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남다른 시재를 보여 7세 때부터 시를 짓기 시작한 그에겐 영감이 떠오르면 얼른 글을 써서 비단 주머니에 넣는 버릇이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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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는 어릴 때 몸이 약해 나귀를 타고 ‘등 뒤에 낡은 비단 주머니를 매단 채(背一古破錦囊/ 배일고파금낭)’ 경치를 보러 다녔다. 그러다 좋은 글귀가 떠오르면 얼른 써서 비단 주머니에 넣었다. 집에 온 뒤에도 시 구절들을 정리하느라 밤늦게까지 잠을 자지 않는 아들을 보고 안타까워한 어머니가 이 아이는 ‘마음을 다 토해놓아야(嘔心/ 구심)’ 그칠 것이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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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에 고심하며 심혈을 기울인다는 嘔心瀝血(구심역혈, 瀝은 스밀 력)의 성어는 여기서 유래했다. 이하보다 조금 뒤의 시인 李商隱(이상은)이 쓴 ‘李長吉小傳(이장길소전)’에 나오는 이야기다. 長吉(장길)은 이하의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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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高祖(고조)의 지손이란 출신에다 당대의 대문호인 韓愈(한유)의 인정을 받은 이하였지만 과거에 응시도 못하고 미관말직을 전전하다 27세에 요절했다. 그렇더라도 특출한 재능과 초자연적 제재를 자주 시로 나타내 鬼才(귀재)란 말을 들었던 이하는 현실을 풍자하는 작품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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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려받은 재산으로 호의호식하며 빈둥거리는 청년들을 향해 ‘평생에 반줄의 글도 읽지 않고(生來不讀半行書/ 생래부독반행서), 다만 황금으로 몸을 귀하게 둘렀구나(只把黃金買身貴/ 지파황금매신귀)’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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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 인생을 알아버린 이하는 중국도 좁다. ‘멀리 세상을 바라보니 몇 점의 연기요(遙望齊州九點煙/ 요망제주구점연), 파도치는 바다도 술잔 속에서 출렁이네(一泓海水杯中瀉/ 일홍해수배중사).’ 九點齊州(구점제주)는 중국의 아홉 주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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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의 어릴 때 시작 버릇에서 나온 이 성어에서 절묘한 시구를 비유하게 됐는데 달리 佳句錦囊(가구금낭), 錦囊佳製(금낭가제)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천재적인 영감을 번득인다고 해도 밤새워 글을 다듬었다는 것을 보면 창작의 고통이 잘 드러난다. 이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명문이나 멋진 시구들도 모두 창작자의 고민의 산물임을 알고 감상할 일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