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미지취金迷紙醉 - 금종이에 미혹되다, 지극히 사치스러운 생활
금미지취(金迷紙醉) - 금종이에 미혹되다, 지극히 사치스러운 생활
쇠 금(金/0) 미혹할 미(辶/6) 종이 지(糸/4) 취할 취(酉/8)
사람이 최소한의 의식주만 해결되면 만족하라며 절제와 검소를 강조한 말이 많다. 하지만 욕심은 끝이 없는 법이라 호화 사치를 표현하는 성어도 수두룩하다. 비단 옷과 흰 쌀밥도 사치였던 錦衣玉食(금의옥식)은 옛날 어려웠을 때라 해도, 금을 흙덩이로 진주를 자갈같이 여긴 金塊珠礫(금괴주력)의 秦始皇(진시황)이나 숯 대신 밀랍으로 땔감을 대신한 以蠟代薪(이랍대신)의 晉(진)나라 거부 石崇(석숭)에 이르면 사치의 극이다. 이들의 호화생활은 과장에 의한 사치도 있었겠지만 방 안의 기물들을 모두 금종이로 바른 孟斧(맹부)는 실생활이었다.
唐(당)나라 말엽의 명의였던 맹부는 악성 종기인 毒瘡(독창)의 치료에 특히 뛰어났다. 널리 소문이 나자 궁중에도 불려가 당시 19대 황제 昭宗(소종, 재위 888~903)의 진료도 맡게 됐다. 차츰 황궁에서 진료하며 지내는 시간과 횟수가 많아지자 궁내의 장식이나 기물의 배치에도 관심을 갖게 되고 나름의 안목을 기르게 됐다. 北宋(북송)에서 대신을 지냈던 陶谷(도곡, 903~970)이 천문과 지리, 초목 등 각종 사물에 대한 유래를 수록한 ‘淸異錄(청이록)’을 남겼는데 여기에 금종이에 취해 정신이 혼미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훗날 맹부는 왕실을 나와 四川(사천)으로 옮겨 생활하게 되었다. 그는 궁중에서 생활했던 환경을 생각하며 자신의 거처도 똑같이 꾸미고 싶었다. 사방 벽에 황금 칠을 하고 기물마다 금종이로 포장했다. 창문을 통하여 햇빛이 비칠 때면 방안은 온통 금빛으로 가득하여 눈을 뜰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어느 날 한 친구가 그를 찾아왔다가 돌아가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이 방에서 잠시 쉬었는데 그만 금종이에 정신을 빼앗겨 취해 버렸네(此室暫憩 令人金迷紙醉/ 차실잠게 영인금미지취).’ 순서를 바꿔 紙醉金迷(지취금미)로도 쓴다.
호화의 극을 다하면 쇠락이 오는 법이다. 진시황과 석숭은 비참한 말로를 맞았다. 손에 닿는 모든 것을 황금으로 변하게 하는 힘을 갖게 된 그리스 신화의 미다스(Midas)왕도 나중에는 눈앞의 음식을 보면서 굶주렸다. 사치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리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어도 항상 모자라 쩔쩔 매는 생활을 하지만, 절약하여 검소한 생활을 하는 사람은 언제나 여유 있게 살아간다.
菜根譚(채근담)의 가르침 ‘奢者富而不足 何如儉者 貧而有餘(사자부이부족 하여검자 빈이유여)’는 흥청망청 낭비하는 사람들이 명심할 말이다. / 글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