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준미주 천인혈金樽美酒 千人血 - 항아리의 좋은 술은 많은 사람의 피, 탐관오리들의 학정
금준미주 천인혈(金樽美酒 千人血) - 항아리의 좋은 술은 많은 사람의 피, 탐관오리들의 학정
쇠 금(金/0) 술통 준(木/12) 아름다울 미(羊/3) 술 주(酉/3) 일천 천(十/1) 사람 인(人/0) 피 혈(血/0)
관직에 있는 공무원을 통칭하여 官吏(관리)라 했다. 세세히 구분하여 官(관)은 중앙의 높은 직위에 있는 사람, 吏(리)는 지방 관서에 속한 하급직 衙前(아전)을 가리켰다. 士農工商(사농공상)이라 하여 관직을 맡은 士(사)가 백성들의 위에 군림했던 지난 시절에는 관리들의 횡포도 심했던 모양이라 貪官汚吏(탐관오리)가 익은 말이 됐다. 고발하는 말이나 경계하는 성어도 많이 따른다.
가혹하게 세금을 쥐어짜거나 겁을 줘 백성들의 재물을 빼앗는 苛斂誅求(가렴주구),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섭다는 苛政猛於虎(가정맹어호)등이 그것이다. 詩經(시경) 魏風(위풍)에 나오는 큰 쥐라는 뜻의 碩鼠(석서)도 도둑질하는 위정자다.
이런 딱딱한 가르침보다 더 잘 와 닿는 말이 금항아리의 맛있는 술(金樽美酒)은 많은 사람의 피(千人血)라는 표현이다. 관리들의 봉록은 물론 의식주 모든 것이 백성의 손에서 나왔다는 말이다. 이 무서운 비유는 판소리로 알려졌다가 소설로도 전해온 ‘春香傳(춘향전)’의 하이라이트에 나온다.
남원 기생의 딸 춘향과 百年佳約(백년가약)을 맺은 李夢龍이몽룡)이 장원급제한 뒤 어사가 되어 돌아왔을 때 卞(변) 사또가 베푸는 잔치자리에 출두하여 꾸짖는다. 짤막하니 전문을 보자.
‘아름다운 동이에 담긴 향기로운 술은 뭇사람의 피요(金樽美酒千人血/ 금준미주천인혈), 옥쟁반의 맛있는 안주는 만 백성의 기름이라(玉盤佳肴萬姓膏/ 옥반가효만성고), 촛불의 눈물 떨어질 때 백성 눈물 떨어지고(燭淚落時人淚落/ 촉루락시인루락), 노래 소리 높은 곳에 원망 소리 드높도다(歌聲高處怨聲高/ 가성고처원성고).’ 백성들을 쥐어짜는 탐관오리들을 준엄하게 꾸짖어 백성들의 스트레스를 시원하게 풀어줬음직하다.
비슷한 의미의 말이 ‘明心寶鑑(명심보감)’에도 있다. ‘관리들은 예물로 받은 비단으로 옷을 지어 입고, 창고에 쌓인 곡식으로 밥을 먹으니, 그대들의 봉록은 모두 백성들의 살과 기름이다(幣帛衣之 倉廩食之 爾俸爾祿 民膏民脂/ 폐백의지 창름식지 이봉이록 민고민지).’ 廩은 곳집 름, 爾는 너 이. 唐(당)나라 太宗(태종)이 말했다고 治政編(치정편)에 나온다.
모든 면에서 맑아진 오늘날에는 탐관오리들이 근절되었을까. 이전보다 규모는 작아졌을지라도 비리는 끊이지 않는다. 시급한 법안 처리를 미루기만 하는 국회는 원망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일자리 대책이나 청년실업, 육아 등 근본적인 대책은 없이 예산을 동원하여 세금 귀한 줄을 모른다. 출두할 어사도 없으니 그가 읊은 시 구절이라도 명심했으면 한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