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작굴서羅雀掘鼠 – 그물로 참새를 잡고 땅을 파서 쥐를 잡다.
나작굴서(羅雀掘鼠) – 그물로 참새를 잡고 땅을 파서 쥐를 잡다.
벌릴 라(网/14) 참새 작(隹/3) 팔 굴(扌/8) 쥐 서(鼠/0)
먹을 것이 없어 들판을 돌아다니며 풀뿌리나 나무껍질을 벗기는 것을 草根木皮(초근목피)로 연명한다고 한다. 적에게 포위돼 성안에 갇힌 채 비축한 식량이 바닥나면 풀뿌리도 없다. 그물을 쳐서 참새를 잡기도(羅雀) 하고, 땅을 파서 쥐를 잡아먹어야(掘鼠) 할 판이다. 막다른 골목의 최악 상황에 부닥치면 더 이상 어찌할 수 없는 상태를 나타낸다. 더하여 궁지에 몰려서도 가만히 죽지는 않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시도하는 것을 비유하기도 한다. 마지막에는 쓸모없는 것까지도 끄집어내어 먹거나 사용한다는 뜻인 羅掘俱窮(나굴구궁), 羅掘殆盡(나굴태진) 등으로 쓰기도 한다.
중국 唐(당)나라 6대 玄宗(현종) 말년에 張巡(장순)이란 장수가 있었다. 그는 충직한데다 재주도 많고 무인답게 담력이 커 주위의 신망을 받았다. 楊貴妃(양귀비)에 홀린 현종이 정사를 척신에 맡기자 나라가 혼란에 빠져 756년 변방의 安祿山(안록산)이 반란을 일으켰다. 장순은 그때 睢陽(수양)이라는 곳에서 수십만 반란군의 맹렬한 공격에도 두려워하지 않고 용감하게 성을 지키고 있었다. 겨우 3000여 명의 군사를 거느렸을 뿐인 장순은 시일이 지나 전세가 다급해지자 비장 南霽雲(남제운)을 이웃 태수 賀蘭進明(하란진명)에게 보내 도움을 청했다. 하지만 평시 장순의 명망을 시기하던 태수는 구경만 할뿐 구원병을 보내지 않았다.
반란군의 포위망 속에 몇 달이 지나자 수양성 안에는 식량이 바닥나고 말았다. 굶주림에 지친 병사들은 처음에는 말을 잡아먹었으나 ‘그물을 쳐서 참새를 잡아먹고, 땅을 파서 쥐를 잡아먹고, 갑옷과 활을 삶아 먹으며 버티는 데까지 이르렀다(至羅雀掘鼠 煮鎧弩以食/ 지라작굴서 자개노이식).’ 鎧는 갑옷 개. 장순은 반란군을 맞이하여 용감하게 싸웠지만 결국 수양성은 무너졌다. 적에게 붙잡힌 장순은 항복을 요구하는 적장 尹子琦(윤자기)에게 도리어 호통 치다 피살되고 말았다. 歐陽修(구양수) 등이 엮은 ‘新唐書(신당서)’ 장순전에 나온다.
굶주림을 모르는 오늘날에도 지구촌에는 약 2억 명의 어린이가 배를 곯는다고 유엔 통계가 밝힌 적이 있다. 이들에겐 풀뿌리 아니라 흙으로 배고픔을 달랜다. 참새와 쥐는 귀한 편이다. 기아를 면하기 위한 도움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식량자급을 위한 대책을 세워주는 것이 중요하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