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갑이을怒甲移乙 - 갑에 당한 노여움을 을에게 화풀이하다.
노갑이을(怒甲移乙) - 갑에 당한 노여움을 을에게 화풀이하다.
성낼 노(心/5) 갑옷 갑(田/0) 옮길 이(禾/6) 새 을(乙/0)
남에게 업신여김을 당했거나 손해를 입었을 때 태연할 사람은 드물다. ‘노하더라도 죄를 짓지 말라’, ‘분노하는 자에게 분노로써 갚지 말라’라는 좋은 말은 성인의 가르침만으로 존재할 때가 많다. 더하여 예수님은 오른쪽 뺨을 때리면 왼쪽 뺨도 대주라며 사랑을 강조했지만 보통 사람들은 당한 이상으로 갚아야 속이 후련하다. 그런데 해를 끼친 상대방이 지위가 높거나 가까이 할 수 없을 때는 자기 속만 끓일 수도 없어 엉뚱한 곳에 화풀이를 한다. 갑에 당한 노여움(怒甲)을 을에게 화풀이 한다(移乙)는 뜻과 같은 우리 속담이 유달리 많은 것은 백성들의 억울함이 그만큼 많았기 때문일 듯하다.
굳이 비슷한 뜻의 쓰임새를 찾는다면 중국 春秋左氏傳(춘추좌씨전)의 昭公(소공) 19년 조를 든다. 楚(초)나라의 子瑕(자하)라는 사람이 엉뚱한 보복을 삼가라고 하면서 제후에게 말하는 데서 나왔다. ‘그에게 무슨 죄가 있습니까, 속담에 집에서 화를 내고 시장가서 화풀이한다고 한 것은 우리 초나라를 두고 한 말입니다(彼何罪 諺所謂室於怒 市於色者 楚之謂矣/ 피하죄 언소위실어노 시어색자 초지위의).’ 여기에서 室於怒 市於色(실어노 시어색), 줄여서 室怒市色(실노시색)이라 쓰기도 한다.
여기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 속담은 풍부하다. ‘다리 밑에서 원을 꾸짖는다’는 직접 말을 못하고 잘 들리지 않는 곳에서 욕이나 불평을 늘어놓는다는 뜻이다. 맞서서는 아무 소리도 못하면서 돌아서서 큰소리치는 소심한 사람을 비웃기도 한다. 旬五志(순오지) 번역으로 橋下叱倅(교하질쉬)다. 倅는 버금, 원 쉬.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긴다’는 鐘樓批頰 沙平反目(종로비협 사평반목)으로 쓰이는데 ‘서울서 매 맞고 시골에서 주먹질 한다’, ‘영에서 뺨 맞고 집에 와서 계집 찬다’, ‘시어미 미워서 개 배때기 찬다’ 등 무궁무진하게 변용된다.\xa0
화를 정당하게 푸는 것은 정신건강에도 이롭다. 화를 낼 줄 모르는 것은 바보이고 화를 내지 않는 것은 현명한 사람이란 서양 격언이 있다. 화가 났을 때 정당하게 풀 수 있으면 좋으련만 엉뚱하게 약자에게 화풀이하거나 심지어 살인까지 저지르는 끔찍한 일이 종종 일어난다. 큰 죄인은 요리조리 법망을 빠져 나가고 올챙이만 걸린다. 지은 행위에 걸맞게 벌을 가하지 않는다면 일반 사람들까지 화가 나는 분노사회가 된다. \xa0/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