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상유족褰裳濡足 - 바지를 걷어 올리고 발을 적시다, 노력이 있어야 일을 이룬다.
건상유족(褰裳濡足) - 바지를 걷어 올리고 발을 적시다, 노력이 있어야 일을 이룬다.
걷어올릴 건(衣/10) 치마 상(衣/8) 젖을 유(氵/14) 발 족(足/0)
일을 이루려면 저절로 되는 것이 없다. 아무리 사소해도 차근차근 준비해야 나중에 성취를 맛본다. 지천으로 넘쳐도 노력이 들지 않으면 헛일이라는 깨우침의 말은 많다. ‘부뚜막의 소금도 집어넣어야 짜다’는 속담은 竈上鹽 執入後鹹(조상염 집입후함, 竈는 부엌 조, 鹹은 짤 함)으로 번역되어 손쉬운 일이라도 힘을 들여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옥이 아무리 많아도 갈고 다듬지 않으면 그릇이 될 수 없다는 玉不琢 不成器(옥불탁 불성기)는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란 말과 같이 잘 알려져 있다. 여기에 조금 어려운 말이지만 아랫도리옷을 걷지 않고(蹇裳) 발을 적실 수 없다(濡足)는 성어가 더 있다. 걷어올릴 褰(건)이 절 蹇(건)으로 된 곳도 있으나 옷 衣(의)가 들어가야 옳겠다.
중국 戰國時代(전국시대) 楚(초)나라 불운의 정치가 屈原(굴원)의 작품이 많이 실린 ‘楚辭(초사)’부터 시작하여 곳곳에 성어가 사용되고 있다. 九章(구장)편의 思美人(사미인) 부분에 연꽃을 꺾어 와 사랑하는 여인의 환심을 사고 싶은데 발을 적시기 싫다고 토로한다. ‘연꽃으로 중매를 삼고 싶지만(因芙蓉而爲媒兮/ 인부용이위매혜), 옷을 걷어 올리고 발 적시기 꺼려지네(憚褰裳而濡足/ 탄건상이유족).’ 조그만 고생도 하지 않고 미인을 얻을 수는 물론 없다. 굴원은 모함으로 쫓겨난 심정을 허리를 구부리며 권세가에 빌붙기 싫다고 나타낸 셈이다.
後漢(후한) 초기 崔駰(최인)은 박학하고 경전에 정통하여 문장을 잘 지었다. 范曄(범엽)의 ‘後漢書(후한서)’엔 그의 이런 말이 있다. ‘일이 생기면 바지를 걷어 발을 적시고, 관이 걸려 있어도 돌아보지 않는다(與其有事 則褰裳濡足 冠掛不顧/ 여기유사 즉건상유족 관괘불고)’며 물에 빠진 사람을 보고서도 건지지 않는다면 어진 사람이 될 수 없다고 했다. 점잖게 뒷짐만 지고서는 다급한 사람을 구할 수 없고 옷을 버릴 수고를 감수해야 된다는 이야기다.
호랑이 새끼를 잡기 위해서는 물론 호랑이굴에 들어가는 모험을 해야 한다. 이런 큰 성취가 아니라도 노력이 조금은 들어가야 작은 일이 이뤄진다. 물고기가 떼를 지어 노닐어도 그물을 먼저 짜지 않고서는 잡지 못하고 입맛만 다신다. 이루는 방법은 훤하게 꿰뚫고 있으면서 자신은 손가락 까딱하지 않고 남에게만 시킨다면 아무도 협조하지 않는다. 또 있다. 멋진 일을 시작하고서 잘못된 점이 드러나면 다시 할 수도 있어야 한다. 큰맘 먹고 발에 물을 적셨다고 엉뚱한 길로 계속 나간다면 깊은 물에서 빠져 나올 수 없는 불행이 닥친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