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화삽관蘆花揷冠 - 갈대꽃을 관에 꽂다, 비밀리에 찬성 여부를 확인하다
노화삽관(蘆花揷冠) - 갈대꽃을 관에 꽂다, 비밀리에 찬성 여부를 확인하다
갈대 로(艹/16) 꽃 화(艹/4) 꽂을 삽(扌/9) 갓 관(冖/7)
비밀리에 모여 어떤 결의를 할 때 자신들의 편인지 반대하는 측인지 알 수가 없다. 이럴 때 동의 반대를 알아보는 행위로 左袒(좌단)이란 말이 있다. 왼쪽 소매를 걷는다는 뜻이다. 중국 前漢(전한)때 呂后(여후)의 국정농단을 뿌리 뽑기 위해 공신 周勃(주발)이 내린 지령에서 나왔다. 군대를 모아놓고 \xa0왕실 바로잡기에 찬성하는 사람에게 왼쪽 소매를 벗으라고 하자 모두 호응하여 거사에 성공했다. 이와 유사한 高句麗(고구려) 때의 이야기도 있다. 갈대꽃(蘆花)을 모자에 꽂으라(揷冠)는 말로 어떤 일에 찬성 여부를 비밀리에 확인하는 일을 뜻한다.
우리나라 최고의 정사 ‘三國史記(삼국사기)’ 권17에 실린 고구려 15대 美川王(미천왕)의 옹립 이야기는 손에 땀을 쥘 만큼 흥미진진하다. 서기 280년 13대 西川王(서천왕, 재위 270~292) 때 만주의 肅愼(숙신)족이 변경을 침략해 백성을 살해하고 재물을 약탈했다. 여러 신하의 추천으로 서천왕은 아우 達賈(달고)를 대장으로 삼아 퇴치하도록 했다. 달고는 뛰어난 지략으로 이들을 물리치고 그 지역의 여러 고을을 평정하자 백성들은 침이 마르도록 그의 공을 칭송했다.
서천왕이 죽고 뒤를 이어 즉위한 아들 烽上王(봉상왕, 재위 292~300)은 평판 좋은 숙부 달고와 왕의 아우 咄固(돌고, 咄은 꾸짖을 돌)를 누명을 씌워 처단했다. 돌고의 아들 乙弗(을불)은 화를 피해 피신하여 고용살이와 소급장수 등 온갖 고생을 다했다. 봉상왕이 사치와 향락으로 인심을 잃자 國相(국상)으로 있던 倉租利(창조리)는 비밀리에 사람을 보내 왕손 을불을 찾게 했다. 뱃사공으로 변신한 을불을 찾아 도성에 숨겨놓고 왕의 사냥 때 창조리는 거사를 선언했다. ‘나와 뜻을 같이 할 사람은 따르라고 하며 갈대 잎을 관에 꽂았다(與我同心者 効我 乃以蘆葉揷冠/ 여아동심자 효아 내이로엽삽관).’
학정에 지친 군사와 백성들이 너도나도 갈대 잎을 꽂으니 창조리 이하 중신들은 바로 왕을 폐하고 을불을 모셔 와 옥새와 인수를 바쳤다. 15대 왕이 된 미천왕(재위 300~331)은 玄菟郡(현도군, 菟는 호랑이 도, 새삼 토), \xa0樂浪郡(낙랑군) 등 漢四郡(한사군)을 빼앗아 국토확장에 큰 업적을 남겼다. 민심과 동떨어진 악정을 펼치던 왕은 백성들에 의해 쫓겨났다. 고구려 때의 이런 교훈을 잊었던 오늘의 우리나라도 경험한 일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