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난흥방多難興邦 - 어려운 일을 많이 겪고 난 뒤 나라가 흥하다
다난흥방(多難興邦) - 어려운 일을 많이 겪고 난 뒤 나라가 흥하다
많을 다(夕/3) 어려울 난(隹/11) 일 흥(臼/9) 나라 방(阝/4)
개인이나 나라나 평안한 나날만 계속되면 좋으련만 그렇게 되지 않아 好事多魔(호사다마)나 禍不單行(화불단행)이란 말이 많이 나왔다. 일면 興盡悲來 苦盡甘來(흥진비래 고진감래)라 하여 나쁘고 어려운 일 다음에는 좋은 세상이 온다고 위안을 주는 교훈도 있다. 어려운 일을 많이 겪으면(多難) 오히려 내부를 결속시켜 나라가 더욱 일어난다는(興邦) 이 성어도 어려움을 극복하고 노력을 많이 기울여야 큰일을 이룰 수 있다는 뜻이다. 나라 위기 때마다 뜻있는 사람들이 인용하여 용기를 고취시키는 말이기도 하다.
중국 三國時代(삼국시대, 220년~280년) 魏(위)나라에서 세력을 떨치던 司馬氏(사마씨)가 왕위를 물려받아 세운 晉(진)나라는 결국 통일을 이뤘다. 하지만 건국 초기 황족 8명의 피비린내 나는 세력 다툼 팔왕지난(八王之亂)이 16년이나 끌어 나라는 혼란의 극에 달했다. 이 틈을 타 북방의 匈奴(흉노), 鮮卑(선비) 등 다섯 민족이 남진한 五胡亂華(오호난화)까지 일어나 2대의 왕이 연속 살해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광대한 영토가 유린되는 이런 난리를 보고도 좌승상 司馬睿(사마예)는 강남에서 관망만 하고 있었다. 보다 못한 祖逖(조적), 劉琨(유곤)과 같은 장수들은 북벌을 단행하는 한편, 180여 명의 이름으로 勸進表(권진표)를 올리고 제위 계승을 권했다. 그 내용 중 ‘많은 재난이나 어려움은 우리나라를 공고히 하게하며, 깊은 근심은 황제로 하여금 더욱 현명하게 해줍니다’ 에서 이 성어가 나왔다. 사마예가 계승한 나라가 東晋(동진)인데 그는 현명하게 대처를 못하고 북벌은 커녕 두 장군을 의심해 죽게 만들었다. ‘晉書(진서)’ 元帝(원제)편에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