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두장군斷頭將軍 - 죽음도 두려워 않는 용감한 장수
단두장군(斷頭將軍) - 죽음도 두려워 않는 용감한 장수
끊을 단(斤/14) 머리 두(頁/7) 장수 장(寸/8) 군사 군(車/2)
목을 자른다는 섬찟한 단어 斷頭(단두)라 하면 대뜸 사형도구 斷頭臺(단두대)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프랑스 대혁명 때인 1789년 의사 출신의 국민의회 의원 기요탱(Guillotin)의 제안으로 만들어져 루이 16세와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 등 많은 사람을 처형했기에 공포정치의 상징이 됐다. 1814년 자연사한 기요탱 자신도 이것으로 목이 달아났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발명 초기엔 죄수들의 고통을 줄이기 위한 발명품이라 했다. 그런데 머리가 떨어진 장군이라면 적진에서 종횡무진 적군을 쓰러뜨리는 용맹스런 장군으로 알기 쉽다. 용감한 장군임은 틀림없어도 이 말은 죽음에 굴복하지 않고 군사를 지휘 통솔하는 장수를 가리켰다.
중국 後漢(후한) 말기 魏蜀吳(위촉오)가 정립한 三國時代(삼국시대, 220년~280년) 때 이야기다. 劉備(유비)는 孫權(손권)과 연합하여 赤壁大戰(적벽대전)에서 曹操(조조)를 대파하고 荊州(형주)지역을 확보했다. 험난한 형주에서 물산이 풍부한 西川(서천)지역으로 진격하기 위해 유비는 의형제 張飛(장비)와 함께 나섰다.
거칠 것 없이 나가던 장비의 대군은 노장 嚴顔(엄안)이 지키던 江州(강주)에 이르렀을 때 막혔다. 엄안이 싸움에 응하지 않고 성문을 굳게 지키며 장비군이 군량이 떨어져 물러나기를 기다리는 작전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몇 차례 싸움 끝에 계략을 써서 성을 점령하고 엄안을 겨우 생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엄안은 장비 앞에 끌려 와서도 꿇어앉으려 하지 않았다. ‘三國志(삼국지)’ 蜀書(촉서)나 ‘三國志演義(삼국지연의)’ 등에서 이 부분을 묘사하면서 성어가 나온다. 장비가 엄안을 향해 대장이 이 지경에 이르고도 항복하지 않고 저항하느냐며 꾸짖었다. 엄안이 낯빛도 흐리지 않고 태연히 대답한다. ‘우리 고을에는 머리 잘릴 장수는 있을지언정 항복하는 장군은 없다(我州但有斷頭將軍 無有降將軍也/ 아주단유단두장군 무유항장군야).’ 머리를 자르라고 길길이 뛰던 장비도 엄안의 굳센 기상에 노여움을 풀고 단상에서 내려와 사죄한 뒤 예의로 그를 맞았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옛날 우리의 死六臣(사육신)이나 영웅담에서 등장한다. 외적의 침입을 당하고서 百折不屈(백절불굴)의 정신을 보여줬던 조상들의 용기는 기리면서도 오늘날 현대인은 윗사람의 잘못을 보고서 침묵하는 것이 대다수다. 특히 바른 말, 쓴 소리 잘 한다고 큰소리치던 사람이 더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위험 앞에서 불의를 보고도 물러서지 않는 기개를 가져야 뜻을 이루고 발전을 가져온다. / 글 : 안병화(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