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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4일 목요일

대발철시大鉢鐵匙 - 큰 주발에 놋수저로 먹는 밥, 일본인이 탐욕으로 봄

대발철시大鉢鐵匙 - 큰 주발에 놋수저로 먹는 밥, 일본인이 탐욕으로 봄

대발철시(大鉢鐵匙) - 큰 주발에 놋수저로 먹는 밥, 일본인이 탐욕으로 봄

큰 대(大/0) 바리때 발(金/5) 쇠 철(金/13) 숟가락 시(匕/9)<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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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鉢(대발)은 흔히 말하는 발이 큰 사람 ‘대발’이 물론 아니고 큰 밥그릇이다. 사기로 만든 沙鉢(사발), 놋쇠로 만든 周鉢(주발)이라 하는 것과, 스님의 공양할 때 쓰는 그릇 바리때를 鉢盂(발우)라 할 때와 같은 글자를 쓴다. 숟가락과 젓가락을 말하는 수저는 匙箸(시저)에서 왔는데 鐵匙(철시)는 쇠로 만든 숟가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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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그릇에다 위로 수북하게 담은 高捧(고봉)밥에 튼튼한 쇠수저라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있다. 많이 먹어야 힘을 쓸 수 있다며 머슴들에 권하고, 예전 할머니들이 잘 큰다고 손자들에게 권했던 정이 느껴진다. 배불리 잘 먹기만 하면 걱정이 없다고 하는데 의외로 이것을 탐욕스럽다고 일본인들은 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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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英祖(영조) 때의 실학자 李瀷(이익, 瀷은 강이름 익)의 다채로운 독서록 ‘星湖僿說(성호사설, 僿은 잘게부술 사)’에 성어와 관련된 내용이 나온다. 음식에 관한 기록이 많이 실린 人事門(인사문)에서다. 鄭運經(정운경)이라는 사람이 제주도 풍물과 생활상을 관찰하여 기록으로 남긴 耽羅聞見錄(탐라문견록)에 나온다면서 인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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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어부가 풍랑으로 대마도에 표류했을 때 그곳의 통역사인 通事(통사)가 했다는 이야기다. ‘조선은 진실로 좋은 나라다(朝鮮固樂國/ 조선고락국). 그러나 사람들이 탐욕이 많다(然人多貪慾/ 연인다탐욕), 큰 주발에 밥을 놋수저로 다져서 배부르게 먹으니(大鉢銕匙 搏飯以飽/ 대발철시 박반이포), 욕심내지 않고서 어찌 견디겠는가(不貪胡得/ 불탐호득).’ 銕은 쇠 鐵(철)의 이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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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봉밥에 김치를 얹어 게 눈 감추듯 먹어치운 뒤 배를 쓰다듬으며 한숨 자는 모습을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중국인은 의복에 사치를 하고(侈於衣服/ 치어의복) 일본인은 집 장식에 재산을 투자하는데(侈於第宅/ 치어제택) 조선인은 음식에 사치한다(侈於飮食/ 치어음식)는 이야기도 떠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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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다녀온 사신의 燕行(연행) 기록 聞見雜記(문견잡기)에 실려 있다. 그러나 밥심으로 힘을 쓴다는 백성들이 호화판으로 사치하기에는 너무나 거리가 멀었을 테다. 이익은 척박한 환경에 농사도 적어 고달픈데다 늘어나는 관원들의 착취도 심해져 깨끗한 淸白(청백)도 죽음은 구원하지 못하니 수북한 밥에 놋수저가 욕심이 될 수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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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세대의 너도나도 못살았을 때 좁은 땅에서 생긴 적은 양식으로 많은 식구들이 연명하려면 한 끼라도 고봉밥이 필요했다. 작은 접시에 나눠 담아 젓가락으로 깨작거리는 사람들이 더 욕을 먹었다. 그러나 모든 것이 풍요해진 오늘날에는 많은 사람들이 비만이 두려워 식단 조절하며 음식을 적게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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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음식을 찾아 가는 미식가나 다른 목적을 위해 단식하는 사람이나 이익 선생의 시 구절을 기억하자. ‘음식을 먹을 때는 예의 있으니 그 원리 하늘에서 나온 거라네(維食有儀 厥則由天/ 유식유의 궐즉유천)’, ‘먹으면서 두려워할 줄 안다면 감히 배를 채우길 어이 바라랴(坐啖知懼 敢睎充哺/ 좌담지구 감희충포).’ 啖은 씹을 담, 睎는 바라볼 희, 哺는 먹일 포.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