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곽리東郭履 - 동곽 선생의 밑창 뚫린 신발, 매우 가난한 생활
동곽리(東郭履) - 동곽 선생의 밑창 뚫린 신발, 매우 가난한 생활\xa0
동녘 동(木/4) 들레 곽(阝/8) 밟을 리(尸/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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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살림살이를 비유할 때 ‘가랑이가 찢어진다’고 한다. 10cm가 조금 넘는 작은 새 뱁새가 긴 다리의 황새를 쫓아간다는 데서 없으면서 무리한다거나, 가랑이 찢어질 정도로 움직여야 풀칠할 정도로 가난하다는 말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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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다는 家徒四壁(가도사벽), 簞食瓢飮(단사표음), 三旬九食(삼순구식) 등의 성어가 유난히 많은 중에, 옷은 다 해어지고 신발은 떨어져 구멍이 났다는 표현이 衣履弊穿(의리폐천), 衣結屨穿(의결구천, 屨는 짚신 구)이다. 여기에 함께 떠오르는 동곽 선생(東郭)의 신발(履)이란 말은 밑창이 다 닳은 신발을 신고 다닐 정도의 가난한 생활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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司馬遷(사마천)의 대작 ‘史記(사기)’에서도 많이 읽히는 列傳(열전) 중에는 뛰어난 기지와 해학을 자랑한 사람들을 모은 滑稽(골계)편이 있다. 처음엔 세 사람만 전해졌다가 前漢(전한)의 사학자인 褚少孫(저소손)이 찾아 덧붙인 곳에 나온다는 東郭(동곽)은 술법을 연구하는 方士(방사) 출신이었다. 바로 앞부분에 등장하는 東方朔(동방삭)과 혼동하는 자료가 많지만 다른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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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오랫동안 조정의 공문을 처리하는 부서에 있었으나 가난을 면치 못해 눈밭을 걷는데 신발 닳은 밑창에 눈이 닿을 정도였다. 사람들이 비웃자 태연히 말한다. ‘사람들이 위의 신발을 보지, 아래를 사람의 발처럼 보이게 할 수 있겠소(令人視之 其上履也 其履下處乃似人足者乎/ 영인시지 기상리야 기리하처내사인족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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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가난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인 동곽은 훗날 황제에게 불려가 都尉(도위) 벼슬을 얻고 봉록이 2000석이 됐다. ‘莊子(장자)‘에도 가난에 관한 마음가짐에 이러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말이 있다. 장자가 성긴 천 조각으로 기운 옷과 해진 신발을 신은 채 魏(위)나라 왕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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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이렇게 망가졌느냐고 왕이 묻자 장자가 답한다. ’옷이 해지고 신발이 구멍 난 것은 가난한 것이지 망가진 것이 아닙니다(衣弊履穿 貧也 非憊也/ 의폐리천 빈야 비비야).‘ 그러면서 선비로서 도와 덕에 대한 뜻이 있으면서도 그것을 실천할 때를 못 만나는 것이 망가진 것이라 했다. 山木(산목)편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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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살이가 갈수록 팍팍해 진다고 아우성인데다 앞서 유례없는 전염병이 들이닥칠 때는 속수무책이다. 이전과 같이 일자리가 늘어나지도 않는 상황에서 하층민과 젊은이부터 직격탄을 맞는다. 이들에게는 옛날 사람들이 견딜만하다고 예찬한 가난이 그대로 받아들여질 리 없고 바로 생사와 직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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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10위권의 풍요를 자랑만 할 것이 아니라 수시로 나타나는 아사자를 없애는 것이 앞서야 한다. ‘가난 구제는 나라도 못한다‘란 말이 있다고 해도 사회보장제도가 엄연히 있는 만큼 촘촘히 살펴 도울 일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