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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19일 화요일

떡국과 만두국

■ 떡국과 만두국

■ 떡국과 만두국

우리는 오랫동안 구정과 신정이라는 이름하에 신년(新年)을 두 번 맞이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신정이니 구정이니 하는 잘못된 명칭은 없어져야 마땅하다. 아직 우리는 음력으로 새해를 맞이하므로 새해(양력 1월1일)와 설날(음력 1월1일)에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의 인사를 두 번 하게 된다. 좋은 말이니 많이 하면 할수록 좋다고 여기면 되고, 새해에 다짐했던 결심이 무너질 만하면 다시 설날을 기해서 새해의 다짐을 할 수 있으니 좋은 면도 있지 않을까.

설날을 전후하여 차례를 지내고 성묘하는 세시풍속은 오늘날에도 전승되고 있지만, 많이 생략되거나 간소화되면서 민속놀이를 비롯하여 갖가지 세시풍속은 퇴색되거나 단절되었다. 시대의 변화는 어찌할 수 없지만, 좋은 세시풍속이 점점 사라지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옛날에는 설날에 대접하는 음식을 세찬이라고 불렀는데, 이 세찬으로 떡국을 먹었다. 설날에 하얀 떡국을 먹는 이유는 고대 태양숭배 신앙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는데, 새해 첫 날을 엄숙하고 청결하게 맞는다는 뜻이다. 길고 흰 가래떡은 장수를 기원하는 마음과 한 해를 밝게 보내자는 뜻이 들어 있다. 떡국의 떡을 둥글게 하는 것은 태양의 둥근 것을 형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설에 떡국을 먹는 풍습의 기원은 명확하지는 않으나 조선 후기 풍속을 설명한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서는 고구려 유리왕 이전으로 보고 있다. 이 책에서는 ‘설날 떡국을 먹는 것은 흰색 음식으로 새해를 시작함으로써 천지만물의 새로운 탄생을 의미하는 뜻으로, 정초 차례와 세찬(歲饌)에 없으면 안 될 음식으로 설날 아침에 반드시 먹었으며 손님이 오면 이것을 대접했다’고 적고 있다.

또한 떡국은 색이 희다 해서 ‘백탕(白湯)’, 떡을 넣고 끓인 탕이라 해서 ‘병탕(餠湯)’이라고도 한다. 그래서 나이를 물을 때 “병탕 몇 사발 먹었느냐”고 하기도 한다. 고려 후기에 원나라에서 배워 온 매사냥으로 귀족들은 꿩을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 꿩으로 육수를 내어 떡국이나 만둣국을 만들어 먹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매사냥을 하지 못하는 백성들은 꿩을 구하기 어려웠고, 꿩 대신 구하기 쉬운 닭으로 육수를 냈던 것이다. 그래서 생겨난 말이 ‘꿩 대신 닭’이라는 속담이다. 요즘은 꿩이나 닭 대신 쇠고기로 육수를 낸다. 이 역시 쇠고기를 쉽게 구하게 된 이후에 생겨난 변화인 것이다.

세찬(歲饌)으로 어깨를 나란히 견주는 것이 떡국과 만둣국인데, 어느 것이 더 귀하고 옳다 그런 것은 없었다. 다만 남쪽 지방에서는 주로 떡국을 먹었고, 북쪽 지방에서는 만둣국을 즐겨 먹었다. 북쪽 지역은 쌀농사를 짓기가 여의치 않아 가래떡을 만드는 것보다 밀가루로 만두를 만드는 것이 더 수월했기 때문이다. 선조들은 설날에 도라지, 고사리, 시금치를 사용한 삼색나물을 꼭 먹었는데, 이는 뿌리채소인 도라지는 ‘과거의 조상’을, 줄기채소인 고사리는 ‘현재의 자신’을, 잎채소인 시금치는 ‘미래의 후손’을 의미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반면 색이 붉은 음식은 거의 만들어 먹지 않았는데, 이는 붉은색이 부정적인 뜻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설날에 마시는 술은 데우지 않고 찬 술을 마시는데. 《경도잡지》에는 『술을 데우지 않는 것은 봄을 맞이하는 뜻이 들어 있는 것이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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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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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18일 월요일

떡국과 만두국

■ 떡국과 만두국

■ 떡국과 만두국

우리는 오랫동안 구정과 신정이라는 이름하에 신년(新年)을 두 번 맞이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신정이니 구정이니 하는 잘못된 명칭은 없어져야 마땅하다. 아직 우리는 음력으로 새해를 맞이하므로 새해(양력 1월1일)와 설날(음력 1월1일)에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의 인사를 두 번 하게 된다. 좋은 말이니 많이 하면 할수록 좋다고 여기면 되고, 새해에 다짐했던 결심이 무너질 만하면 다시 설날을 기해서 새해의 다짐을 할 수 있으니 좋은 면도 있지 않을까.

설날을 전후하여 차례를 지내고 성묘하는 세시풍속은 오늘날에도 전승되고 있지만, 많이 생략되거나 간소화되면서 민속놀이를 비롯하여 갖가지 세시풍속은 퇴색되거나 단절되었다. 시대의 변화는 어찌할 수 없지만, 좋은 세시풍속이 점점 사라지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옛날에는 설날에 대접하는 음식을 세찬이라고 불렀는데, 이 세찬으로 떡국을 먹었다. 설날에 하얀 떡국을 먹는 이유는 고대 태양숭배 신앙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는데, 새해 첫 날을 엄숙하고 청결하게 맞는다는 뜻이다. 길고 흰 가래떡은 장수를 기원하는 마음과 한 해를 밝게 보내자는 뜻이 들어 있다. 떡국의 떡을 둥글게 하는 것은 태양의 둥근 것을 형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설에 떡국을 먹는 풍습의 기원은 명확하지는 않으나 조선 후기 풍속을 설명한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서는 고구려 유리왕 이전으로 보고 있다. 이 책에서는 ‘설날 떡국을 먹는 것은 흰색 음식으로 새해를 시작함으로써 천지만물의 새로운 탄생을 의미하는 뜻으로, 정초 차례와 세찬(歲饌)에 없으면 안 될 음식으로 설날 아침에 반드시 먹었으며 손님이 오면 이것을 대접했다’고 적고 있다.

또한 떡국은 색이 희다 해서 ‘백탕(白湯)’, 떡을 넣고 끓인 탕이라 해서 ‘병탕(餠湯)’이라고도 한다. 그래서 나이를 물을 때 “병탕 몇 사발 먹었느냐”고 하기도 한다. 고려 후기에 원나라에서 배워 온 매사냥으로 귀족들은 꿩을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 꿩으로 육수를 내어 떡국이나 만둣국을 만들어 먹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매사냥을 하지 못하는 백성들은 꿩을 구하기 어려웠고, 꿩 대신 구하기 쉬운 닭으로 육수를 냈던 것이다. 그래서 생겨난 말이 ‘꿩 대신 닭’이라는 속담이다. 요즘은 꿩이나 닭 대신 쇠고기로 육수를 낸다. 이 역시 쇠고기를 쉽게 구하게 된 이후에 생겨난 변화인 것이다.

세찬(歲饌)으로 어깨를 나란히 견주는 것이 떡국과 만둣국인데, 어느 것이 더 귀하고 옳다 그런 것은 없었다. 다만 남쪽 지방에서는 주로 떡국을 먹었고, 북쪽 지방에서는 만둣국을 즐겨 먹었다. 북쪽 지역은 쌀농사를 짓기가 여의치 않아 가래떡을 만드는 것보다 밀가루로 만두를 만드는 것이 더 수월했기 때문이다. 선조들은 설날에 도라지, 고사리, 시금치를 사용한 삼색나물을 꼭 먹었는데, 이는 뿌리채소인 도라지는 ‘과거의 조상’을, 줄기채소인 고사리는 ‘현재의 자신’을, 잎채소인 시금치는 ‘미래의 후손’을 의미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반면 색이 붉은 음식은 거의 만들어 먹지 않았는데, 이는 붉은색이 부정적인 뜻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설날에 마시는 술은 데우지 않고 찬 술을 마시는데. 《경도잡지》에는 『술을 데우지 않는 것은 봄을 맞이하는 뜻이 들어 있는 것이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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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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