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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28일 목요일

매란국죽梅蘭菊竹 - 매화와 난초와 국화와 대나무, 고결함을 상징으로 하는 시서화의 대표적

매란국죽梅蘭菊竹 - 매화와 난초와 국화와 대나무, 고결함을 상징으로 하는 시서화의 대표적 소재 

매란국죽(梅蘭菊竹) - 매화와 난초와 국화와 대나무, 고결함을 상징으로 하는 시서화의 대표적 소재\xa0

매화 매(木/7) 난초 란(艹/17) 국화 국(艹/8) 대 죽(竹/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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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와 난초, 국화와 대나무를 합쳐 梅蘭菊竹(매란국죽)이라 하고, 이것을 四君子(사군자)라 부른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많고 많은 식물 중에서 이들이 덕행과 학문이 뛰어난 군자로 떠받들어지고 있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유교사회에서 뜻을 굽히지 않는 지조와 절개를 큰 덕목으로 지키는데 이 식물들이 각각 특유의 장점을 지니고 있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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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는 꽃샘추위를 이겨내고 가장 먼저 꽃을 피우며, 난초는 산중에서 홀로 은은한 향기를 멀리 퍼뜨린다. 늦가을 서리 맞으면서도 고고한 국화, 모두 잎을 떨군 겨울철에 독야청청한 대나무 등은 그래서 선비들의 시화의 소재로 사랑받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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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군자는 나라가 어지러울 때 더 발전했다는데 은둔생활을 하며 즐길 수 있기 때문으로 본다. 사군자를 각각 노래한 시문은 부지기수라도 잘 알려진 몇 가지만 보자. 먼저 추위를 이기고 꽃을 피워 향기를 내뿜는 매화는 우리 시가에만도 600여 수를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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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世祖(세조) 때의 문신 姜希顔(강희안)이 養花小錄(양화소록)에서 1품으로 쳤고, 退溪 李滉(퇴계 이황)의 운명 때 남긴 말이 ‘저 매화에 물을 주어라‘라 했을 정도로 아꼈다. 申欽(신흠)의 ’매화는 일생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梅一生寒不賣香/ 매일생한불매향)‘란 명구는 음미할수록 와 닿는다. 중국 宋(송)나라 林逋(임포, 逋는 도망갈 포)는 매화를 아내 삼고 학을 아들로 삼아 梅妻鶴子(매처학자)로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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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약한 잎에 굳게 솟은 꽃대에서 피는 난초꽃은 고귀한 절개를 나타내 戰國時代(전국시대) 楚(초)나라의 屈原(굴원)이 離騷(이소)에서 그 향기를 노래했다는데 역사는 오래 되지만 숫자는 가장 적다. 향기가 십리를 간다고 香聞十里(향문십리)에, 지초와 감화를 주고받는 우정 芝蘭之交(지란지교) 등 듣기만 해도 미소가 머금어지는 성어가 다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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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문신이자 시인, 서화가였던 申緯(1769~1845)의 시 구절은 명언이다. ‘사람 그리며 한 그리기 어렵고, 난초 그려도 그 향기 그리기 어렵네(畵人難畵恨 畵蘭難畵香/ 화인난화한 화란난화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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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초가 봄이라면 국화는 가을이라 春蘭秋菊(춘란추국)이라 했다. 국화라 하면 晉(진)나라 陶淵明(도연명)의 ‘동쪽 울 밑에서 국화를 꺾어들고 아득히 저 멀리 남산을 바라보네(采菊東籬下 悠然見南山/ 채국동리하 유연견남산)’ 구절을 먼저 떠올린다. 국화가 꽃 중의 은일자라며 은자의 심경을 노래했다. 이보다 落木寒天(낙목한천)에 홀로 핀 국화의 傲霜孤節(오상고절)을 읊은 李鼎輔(이정보)의 시조나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라 한 徐廷柱(서정주)의 시가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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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는 尹善道(윤선도)가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사철 푸르다고 좋아했는데 앞서 金時習(김시습)도 그 절개를 노래한 것이 있다. ‘바위 모퉁이에 솟은 푸른 대나무, 바위 아래 땅에다 뿌리를 붙였구나(綠竹出巖嵬 托根巖下土/ 녹죽출암외 탁근암하토), 늙어 갈수록 더욱 굳어지는 절개, 우수수 밤비를 머금었구나(老去節兪剛 蕭蕭藏夜雨/ 노거절유강 소소장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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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군자의 고난을 이기고 고고한 절개를 은은히 내뿜는 덕목을 시화로 예찬하기보다 실생활에서 닦고 실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뒤로 더 구린 모습을 보일 때 더욱 그러하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