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맥반정승麥飯政丞 - 보리밥 정승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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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7일 일요일

맥반정승麥飯政丞 - 보리밥 정승, 근검절약하는 지도층 인사

맥반정승麥飯政丞 - 보리밥 정승, 근검절약하는 지도층 인사

맥반정승(麥飯政丞) - 보리밥 정승, 근검절약하는 지도층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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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는 쌀과 함께 주식의 대종이다. 보리밥은 그릇 위로 수북하게 고봉으로 제공하여 \xa0장정들에게 힘을 내게 한다. 요즘이야 보리밥은 성인병 예방에 좋다며 건강식으로 대우받지만 식량이 부족했던 옛날에는 가난의 상징이었다. 저장했던 곡식이 다 떨어지고 햇보리가 나올 때까지 보릿고개에 서민들은 草根木皮(초근목피)로 연명했다. 얼마나 힘들었던지 ‘보릿고개가 태산보다 높다’고 했다. 이런 보리밥을 나라의 가장 높은 대신인 정승이 즐긴다면 부정부패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겠다.\xa0

조선 정조때 우의정, 좌의정을 두루 역임한 金鍾秀(김종수, 1728~1799)는 매우 청렴하고 강직한 사람이었다. 그가 ‘보리밥 정승’이라 불리게 된 이야기가 그의 아호를 딴 몽오집과 왕조실록에 전한다고 ‘한국고사성어에 소개하고 있다. 김종수가 은퇴하여 낙향해 있을 때였다. 당시 관습으로 지방관이 새로 임명되면 그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전직 대신들에게 문안하는 것이 예의였다고 한다. 인사를 오면 노대신은 허름한 베옷에 나막신을 신고 반가이 맞으며 굳이 식사 한 끼를 대접했다.

그런데 지방관들이 받는 밥상에는 언제나 꽁보리밥에 김치 한 접시, 막걸리 한 잔이 전부였다. 노재상이 권하는 것이라 어쩔 수 없이 상에 앉아도 목에 넘어갈 리 없었다. 겸상하는 정승이 맛있게 먹으니 신임 사또는 고역이었다. 그러면서 당부의 말도 곁들인다. ‘앞으로 부임하면 항상 이 밥상을 생각해야 하네. 앞으로 먹을 진수성찬은 보리밥도 제대로 못 먹는 백성들의 피와 땀으로 이루어진 것일세. 그러니 언제나 그 노고를 잊지 말고 선정을 베풀어야 할 것이야.’ 그의 충고를 들은 지방관들은 큰 깨달음을 얻고 백성들을 잘 보살폈다고 한다.

이런 보리밥 정승은 은퇴한 뒤에도 신임 수령에게 본보기로 청렴을 가르친 반면 伴食宰相(반식재상)이란 것도 있다.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 국사에 책임은 지지 않고 곁다리 끼어서 밥이나 축내는 무능한 재상이다. 이런 지도자 아래서는 나라가 잘 돌아갈 수 없어 우왕좌왕하기 마련이다. 고위직 인사마다 능력과 도덕성에 흠결이 있는 사람이 등장하니 국민만 고생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