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몽고풍과 고려양 3편
■ 몽고풍과 고려양 3편
고려의 문화가 원나라에 퍼져나간 경로는 다양하지만, 가장 주요한 경로는 수많은 공녀들과 환관들이 끌려가서 원나라 황실 내부 고위층에 고려인이 많아지다 보니 이들을 통해 저절로 고려의 풍습이 전파되고 유행하게 된 것이다. 또, 공녀로 몽고에 끌려간 여인네들에 의해 자연스럽게 고려의 음식이나 옷, 언어 등이 전해지면서 고려의 문화는 몽고에서 크게 유행했다. 이를 ‘고려양’이라고 한다.
특히, 기황후가 원나라의 실권을 장악하면서 더욱 고려 문화의 영향은 커지게 되었다. 비록 고려가 몽고의 간섭을 받긴 했지만, 당시 고려의 문화 수준은 몽고에 비해 훨씬 높은 수준이었던 것이다. 원피스 모양의 전통 중국식 한푸와 다른 풍성한 치마와 저고리 조합의 고려 스타일이 원대부터 명대에 이르는 중국 여인들 사이에서 유행했는데 이 역시 고려양이었다. 이러한 여성 복식 외에도 남성 복식도 영향을 받은 것이 있는데 두루마기를 걸치는 것이 대표적이다.
고려청자와 나전칠기, 고려의 먹과 종이 같은 문물 이외에도 우리 전통 한과인 ‘유밀과’를 ‘고려병’이라 부르며 즐겨먹었다. 시루에 떡을 해먹는 것과 상추와 같은 쌈채소도 고려인들이 몽고에 전해 준 것이다. 공녀들이 고향을 그리워하며 심어 기른 것을이 몽고인들도 즐겨 먹게 된 것이다. 몽고에 끌려간 공녀들은 ‘비파’라는 악기로 고려의 음악을 연주하며 고향을 그리워했다. 그래서 ‘고려악’이라 하여, 지금의 K-팝이 유행하듯이 고려의 음악도 인기가 많았다. 원조 한류인 셈이다.
고려양은 원나라 때의 유행으로만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후 명나라 시대에도 한동안 유행이 계속됐으며, 명나라 건국 후 100여년이 지난 홍치제에 들어서야 원래 중국 풍습이 아니라는 이유로 금지되었다. 중국의 드라마나 영화 중 원나라 말기에서 명나라 초기를 배경으로 한 작품을 보면 이러한 복식을 볼 수 있다.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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