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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13일 수요일

무망재거毋忘在莒 - 거나라 때의 고난을 잊지 말라, 항상 어려웠을 때를 기억하라.

무망재거毋忘在莒 - 거나라 때의 고난을 잊지 말라, 항상 어려웠을 때를 기억하라.

무망재거(毋忘在莒) - 거나라 때의 고난을 잊지 말라, 항상 어려웠을 때를 기억하라.

말 무(毋/0) 잊을 망(心/3) 있을 재(土/3) 모시풀 거(艹/13)

젊은 시절의 고생은 성인이 된 이후 성공 여부에 큰 영향을 끼친다. ‘초년고생은 은을 주어도 안 바꾼다’는 말이 있다. 사서 고생을 할리야 없겠지만 어쩔 수 없어 한 고생이라도 성공한 뒤 돌아보면 큰 도움이 됐음을 알게 된다. 그래서 ‘초년고생은 만년 복’이라며 초심을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

중국 春秋時代(춘추시대) 조그만 제후국이 있었던 莒(거)땅에서 어려운 생활을 했던 때를 잊지 말라(毋忘)고 한 이 성어도 같은 의미다. 고생 끝에 낙이 왔다고 그 시절을 잊으면 다시 화가 닥칠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비유다. 이전에 나왔던 勿忘在莒(물망재거)와 같은 말인데 두 군데서 유래를 찾는다.

春秋五霸(춘추오패)가 되기 전의 齊(제)나라 공자 小白(소백)은 왕권다툼을 피해 鮑叔牙(포숙아, 鮑는 절인물고기 포)와 함께 周(주)나라 제후국인 莒(거)나라에 있었다. 管仲(관중)이 섬겼던 공자 糾(규)보다 한 발 빨리 왕위에 올라 桓公(환공)이 된 소백은 능력 위주로 현신을 모아 부강한 나라로 만들었다.

관중은 환공을 해치려 했음에도 管鮑之交(관포지교)로 알려진 포숙아의 추천으로 기용됐고, 마부 출신의 甯戚(영척, 甯은 차라리 영)도 중용됐다. 환공이 어느 때 술자리를 갖고 포숙아에게 축하의 말을 청했다. ‘왕께서는 거 땅에서 나올 때를 잊지 않아야 합니다(使公毋忘出奔在於莒也/ 사공무망출분재어거야).’ 고생했을 때를 기억하라는 조언은 ‘呂氏春秋(여씨춘추)’의 直諫(직간)편에 실려 있다.

세월이 흐른 뒤 戰國時代(전국시대) 제나라 湣王(민왕, 緡은 돈꿰미 민)때 북쪽의 강국 燕(연)나라의 침입을 받았다. 원한이 있었던 연나라는 명장 樂毅(악의)를 영입하여 제나라 곳곳을 유린하며 연전연승했다. 겨우 남은 2개의 성 중에서 莒城(거성)에 피신했던 민왕이 피살되는 등 풍전등화였을 때 백성들이 받든 장군 田單(전단)이 유언비어를 퍼뜨려 악의를 쫓아내는데 성공했다.

이어 소 1000 마리의 꼬리에 기름 적신 갈대를 매달고 불을 붙인 채 적진을 휘저은 火牛計(화우계)로 완전히 연나라 군대를 내쫓았다. 은신하던 왕자를 찾아내 ‘거 땅에서 찾아내 襄王(양왕)으로 맞아들이고(迎襄王於莒/ 영양왕어거)’ 사직을 지켰다. 망하기 직전의 제나라를 거성이 지킨 셈이다. ‘史記(사기)’ 전단 열전에 나온다.

중국에 인접한 臺灣(대만) 영토 진먼다오金門島/ 금문도에는 중공군의 야습과 집중 포격을 막아낸 곳곳에 이 성어가 새겨져 있다고 한다. 대만은 대륙의 온갖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어려움을 잘 이겨냈기 때문에 오늘의 번영을 이어가고 있다. 형편이 조금 나아지면 고생했을 때는 까맣게 잊고 흥청망청하다 전 국민이 어려움에 빠진 남미의 여러 나라와는 대조적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