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왕과 선화공주의 러브스토리 4편
■ 무왕과 선화공주의 러브스토리 4편
그러나 일각에서는 선화공주가 왕후는 아니라 하더라도 무왕과 결혼한 것은 사실일 것이라고 보고 있다. 어디까지나 추측이지만 무왕은 사랑했던 선화공주를 데려와 부인으로 맞이했지만 선화공주는 무왕이 즉위하기 전에 죽었고, 당시 귀족들의 세력에 위축되어 있던 무왕은 강성한 백제 재건을 위해 당대 최고 가문의 딸과 정략결혼을 한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도 가능하다. 그래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나오는 미륵사 창건설화 기록은 선화공주를 왕후(왕비)가 아닌 부인으로 기록하고 있다.
익산에는 180m거리를 사이에 두고 대왕릉과 소왕릉이 있다. ‘쌍릉’으로 불리는 이 두 무덤은 익산시 석왕동 숲속에 자리하고 있다. ‘쌍릉’의 주인을 두고 논란은 있지만, 백제의 고고학적 자료가 많이 나와 약 1400여 년 전의 백제 역사를 새롭게 조명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쌍릉’은 1917년 당시 조선총독부가 고적조사사업의 일환으로 일본인 야쓰이 세이치 등이 중심이 돼 약식 발굴을 했다. 당시 출토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목관의 일부, 목을 장식한 금속 장식물들, 치아, 토기 등은 국립전주박물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원형 봉토 형식의 무덤으로 대왕릉이 지름 30m, 높이 5m규모이고, 소왕릉은 조금 작은 지름 24m, 높이 3.5m다. 대왕릉은 무왕이, 소왕릉에는 왕비인 선화공주가 묻혀 있다고 알려져 왔다. 그러나 학계에서는 무왕과 선화공주의 사랑 이야기의 실체, 나아가 대왕릉과 소왕릉에 묻힌 주인공이 과연 무왕과 왕비인 선화공주이냐를 둘러싸고 수십 년 째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 2016년에는 대왕릉의 주인공이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라는 연구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국립전주박물관이 일제강점기 때의 유물들을 분석한 결과 대왕릉 목관 내부에서 발견된 것으로 전해지는 치아 4점이 20~40세 여성의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여자의 치아와 신라계토기가 나온 곳으로 보아 선화공주의 무덤으로 추정하고, 무왕의 능은 부여 쪽에 있을 것으로 보아왔으나, 몇 년 전 정식 발굴 결과 노년층의 남자로 보이는 낙상흔적이 있는 엉덩이뼈 등이 발굴되어 현재 대왕릉은 무왕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2015년에는 중앙박물관이 유물 보존처리 과정에서 금동장식물이 소왕릉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는 조사결과를 내놓았다. 그런데 장식물 연구 결과 소왕릉이 대왕릉보다 먼저 조성된 것으로 추정됐다. 이는 소왕릉의 주인공이 무왕보다 1년 늦게 사망한 왕비인 사택적덕의 딸이 아니라, 무왕이 왕위에 오르기 전 죽은 선화공주일 가능성을 높여주었다. 소왕릉은 지난 2019년 4월 정식발굴을 시작하였다. 과연 소왕릉은 누구의 묘일까? 무왕과 선화공주의 러브스토리는 어디까지가 실화일까? 진실이 밝혀지기를 기대해본다.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