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전성시門前成市 -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 집 문 앞이 시장을 이루다.
문전성시(門前成市) -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 집 문 앞이 시장을 이루다.
문 문(門/0) 앞 전(刂/7) 이룰 성(戈/3) 저자 시(巾/2)
아주 쉬운 글자로 이루어진 이 성어는 문 앞(門前)에 시장을 이룰(成市) 정도로 사람이 많이 찾는다는 뜻이다. 권세가 많은 세력가의 집이나 부자가 된 집에 방문객들이 몰린다. 평시에 잘 보이려고, 또 명절이나 인사철에 상급자의 집에 뇌물을 갖다 바치는 것을 뜻했다. 오늘날 인사가 점차 맑아져 이면으로는 어떨지 몰라도 겉으로는 이런 청탁자의 門前成市는 사라졌다. 그러다가 시장에서 어떠한 물건이 입소문을 타고 유명해져 손님들이 꽉 차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 자연스럽게 됐다. 설을 앞두고 백화점이나 재래시장 등은 제수용품을 사고파는 일로 요즘이 바로 그렇다.
司馬遷(사마천, 기원전 145년~80년)의 ‘史記(사기)’와 더불어 중국의 양대 사서로 불리는 班固(반고)의 ‘漢書(한서)’에 이같은 내용이 처음 실렸다. 鄭崇孫寶傳(정숭손보전)의 이야기에 따르면 前漢(전한) 말기 哀帝(애제) 때의 정숭은 충신으로서 이름이 높았다. 그러나 젊은 나이에 즉위한 왕은 외척들이 조정을 쥐락펴락하는데도 아랑곳없이 미소년 董賢(동현)과의 동성애에 빠져 헤어 나올 줄 몰랐다.
정숭은 거듭 미소년을 멀리 하라고 간했으나 왕은 귀를 기울이지 않았고 이내 왕의 미움만 사게 되었다. 이때 아첨배 趙昌(조창)이 나서 정숭을 종친과 내통한다고 무고했다. 애제는 즉시 정숭을 불러 ‘경의 문전이 시장과 같다고 하던데(君門如市人/ 군문여시인) 그러면서도 나로 하여금 하지 말라는 말을 할 수 있는가?’ 하고 캐물었다. 정숭은 “신의 집 문 앞이 저자와 같을지라도 신의 마음은 물과 같습니다(臣門如市 臣心如水/ 신문여시 신심여수)‘ 하며 공정한 조사를 원했지만 옥에 갇히고 말았다. 손보가 억울함을 상소했지만 자신도 쫓겨나고 정숭은 옥사했다.
아첨배의 말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인지 음습한 뜻이 내포된 門前成市와 달리 비슷한 뜻의 門庭若市(문정약시)는 간언하러 모여드는 사람들로 인해 궁전의 문과 뜰은 시장과 같았다는 긍정적인 성어다. 반면 흥청이던 집에 인적이 끊긴 경우는 문 앞에 참새가 집을 짓는다는 뜻의 門前雀羅(문전작라)라 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