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정왕후 1편
■ 문정왕후 1편
조선의 13대 왕 명종(1534~1567년)은 왕으로서 그다지 우리 기억에 남지 않는 존재감 0의 왕이다. 오히려 그의 어머니인 문정왕후(文定王后)가 훨씬 강한 이미지로 남아있고, 사극드라마의 단골 주인공이기도 했다. 아주 오래 전 ‘여인천하’라는 제목으로 방영된 드라마의 주인공이기도 했다.
인종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12세의 어린 나이에 자신의 아들 경원대군이 왕위에 오르자, 문정왕후는 수렴청정(垂簾聽政:발을 드리우고 왕의 뒤에서 하는 정치)에 나섰다. 이전에 예종과 성종이 정희왕후의 수렴청정을 받은 적이 있지만 거의 형식적인 선에서 그쳤다. 제대로 수렴청정을 받은 최초의 왕은 아마도 명종일 것이다. 명종 시대에는 문정왕후 이외에도 외삼촌 윤원형과 그의 정부 정난정, 그리고 문정왕후가 힘을 실어준 승려 보우(普雨)까지 막강한 인물들이 줄줄이 등장하면서 명종은 왕이면서도 늘 뒷전이었다.
조선의 왕비 중에는 특히 윤씨(尹氏)가 많았는데 중종의 두 계비(繼妃)도 모두 윤씨였다. 그래서 첫째 계비 장경왕후(章敬王后)의 집안을 대윤, 둘째 계비 문정왕후(文定王后)의 집안을 소윤(小尹)이라 불렀다. 장경왕후는 다음 왕이 된 인종을 낳았고, 문정왕후는 인종을 이은 명종(경원대군)을 낳았다. 장경왕후가 일찍 죽자 당연히 문정왕후는 자기가 나은 경원대군을 왕으로 만들기 위해 자신의 두 동생인 윤원로와 윤원형을 동원했다. 인종이 즉위하자 당연히 왕의 외척으로 대윤이 정권을 장악했으나 즉위 8개월 만에 후사도 없이 왕이 죽자, 인종의 죽음에 소윤(小尹)들의 음모가 있다고 믿은 대간들이 윤원로를 탄핵했다. 음모와 술수의 대가인 문정왕후(文定王后)는 할 수 없이 윤원로를 실각시키고(형식적인 조치) 대신 윤원형(尹元衡)을 내세웠다. 하지만, 인종의 뒤를 이어 자신이 나은 경원대군이 명종으로 즉위하자 대세는 완전히 소윤 쪽으로 기울어졌다.
문정왕후(文定王后)는 앞서 윤원로를 실각시킨 배후에 죽은 장경왕후의 오빠인 형조판서 윤임(尹任)이 있다고 믿어, 몰래 윤원형을 시켜 윤임과 그 일당을 치죄하도록 했다. 문정왕후(文定王后)의 밀지와 윤원형 일당의 모함으로 윤임을 비롯한 대윤(大尹)들은 죄도 없이 억울하게 역모로 몰려 모조리 지방으로 유배되고, 드디어 윤원형(尹元衡)일파가 조정을 장악하게 되었다. 유배를 당한 윤임, 유관, 유인숙 등이 유배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이들을 사사(賜死)하라는 명종(明宗)의 어명이 먼저 도착해 있었다. 대윤(大尹)일파가 사그리 죽자 윤원형, 정순봉, 이기, 임백령, 허자 등 소윤일파가 공신으로 책봉되었다. 문정왕후(文定王后)와 간신들이 짜고 반대파를 숙청한 다음 저희끼리 공(功)을 나눠 먹은 것이다.
이것이 을사사화이다. 결국 을사사화는 사림파내에서 윤씨의 집안싸움으로 벌어진 사건이다.
- 2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