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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26일 화요일

반근착절盤根錯節 – 구부러진 나무뿌리와 얼크러진 마디, 처리하기 어려운 사건

반근착절盤根錯節 – 구부러진 나무뿌리와 얼크러진 마디, 처리하기 어려운 사건

반근착절(盤根錯節) – 구부러진 나무뿌리와 얼크러진 마디, 처리하기 어려운 사건

소반 반(皿/10) 뿌리 근(木/6) 어긋날 착(金/8) 마디 절(竹/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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칡과 등나무가 서로 얽혀 있는 것이 葛藤(갈등)이다. 개인이나 집단 사이에 목표나 이해관계가 다르면 서로 으르렁거린다. 이와 비슷하게 둥그렇게 서린 나무뿌리(盤根)와 얼크러진 마디(錯節)란 뜻의 성어도 있다. 소반 盤(반)에는 굽다, 둥그렇게 감긴 모양 서리다란 뜻도 있다. 줄여서 盤錯(반착) 또는 槃根錯節(반근착절, 槃은 쟁반 반)이라 쓰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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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이 적대시하거나 충돌할 정도로 악화된 상태라면 이 말은 일이 복잡하게 얽혀 처리가 곤란한 사건이나 그로 인한 고통을 의미한다. 거기에서 세력이 깊이 뿌리박고 있어 흔들리지 않는 상태를 뜻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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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後漢(후한, 서기 25~220)의 6대 安帝(안제) 때 虞詡(우후, 詡는 자랑할 후)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강직한 성품으로 어릴 때부터 학업에 힘썼고 효행도 지극해 자신을 길러준 할머니를 위해 관직을 사양할 정도였다. 할머니의 사후 주위의 천거로 郎中(낭중)의 벼슬에 나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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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5대 殤帝(상제)는 출생 후 100여 일만에 즉위하였다가 8개월 만에 죽고 안제도 13세로 왕위에 올랐기 때문에 외척인 鄧騭(등즐, 騭은 수말 즐)이 정사를 좌우했다. 그 무렵 이민족이 국경지대에 있는 幷州(병주)와 涼州(양주)를 침입해 오자 국비부족을 이유로 등질이 양주를 포기하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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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우후가 나서 장군이 나오고, 재상이 나오는 땅을 버리면 안 된다고 주장하여 맞서자 등즐의 미움을 샀다. 얼마 뒤 朝歌(조가)라는 지역에서 민란이 일어나 태수가 살해되는 일이 생겨 등즐이 보복으로 우후를 그곳 군수로 파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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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지로 가는 우후를 위로하기 위해 친구들이 모였다. 우후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태평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구부러진 뿌리와 뒤틀린 옹이마디를 만나지 않고서야 어찌 날카로운 칼날의 진가를 알 수 있겠는가(不遇槃根錯節 何以別利器乎/ 불우반근착절 하이별리기호)?’ 험지에 가서야 진가를 발휘한다는 이야기였다. 과연 우후는 민란을 깨끗이 수습하고 역량을 인정받았다. ‘後漢書(후한서)’ 우후전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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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에 이해관계가 얽히지 않는 곳이 없겠지만 항상 시끄러운 곳이 정치판이다. 정권을 잡는 것이 존재 이유인 정당이라 이해할 만하지만 국민들의 눈에는 산적한 민생을 두고 싸움만 한다고 여긴다. 협상과 양보는 얽힌 뿌리와 가지를 헤치는데 도움이 되련만 그것이 좀처럼 어렵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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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6일 수요일

반근착절盤根錯節 – 구부러진 나무뿌리와 얼크러진 마디, 처리하기 어려운 사건

반근착절盤根錯節 – 구부러진 나무뿌리와 얼크러진 마디, 처리하기 어려운 사건

반근착절(盤根錯節) – 구부러진 나무뿌리와 얼크러진 마디, 처리하기 어려운 사건

소반 반(皿/10) 뿌리 근(木/6) 어긋날 착(金/8) 마디 절(竹/9)

칡과 등나무가 서로 얽혀 있는 것이 葛藤(갈등)이다. 개인이나 집단 사이에 목표나 이해관계가 다르면 서로 으르렁거린다. 이와 비슷하게 둥그렇게 서린 나무뿌리(盤根)와 얼크러진 마디(錯節)란 뜻의 성어도 있다. 소반 盤(반)에는 굽다, 둥그렇게 감긴 모양 서리다란 뜻도 있다. 줄여서 盤錯(반착) 또는 槃根錯節(반근착절, 槃은 쟁반 반)이라 쓰기도 한다. 갈등이 적대시하거나 충돌할 정도로 악화된 상태라면 이 말은 일이 복잡하게 얽혀 처리가 곤란한 사건이나 그로 인한 고통을 의미한다. 거기에서 세력이 깊이 뿌리박고 있어 흔들리지 않는 상태를 뜻하기도 한다.

중국 後漢(후한, 서기 25~220)의 6대 安帝(안제) 때 虞詡(우후, 詡는 자랑할 후)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강직한 성품으로 어릴 때부터 학업에 힘썼고 효행도 지극해 자신을 길러준 할머니를 위해 관직을 사양할 정도였다. 할머니의 사후 주위의 천거로 郎中(낭중)의 벼슬에 나가게 됐다. 앞서 5대 殤帝(상제)는 출생 후 100여 일만에 즉위하였다가 8개월 만에 죽고 안제도 13세로 왕위에 올랐기 때문에 외척인 鄧騭(등즐, 騭은 수말 즐)이 정사를 좌우했다.

그 무렵 이민족이 국경지대에 있는 幷州(병주)와 涼州(양주)를 침입해 오자 국비부족을 이유로 등질이 양주를 포기하려고 했다. 이에 우후가 나서 장군이 나오고, 재상이 나오는 땅을 버리면 안 된다고 주장하여 맞서자 등즐의 미움을 샀다. 얼마 뒤 朝歌(조가)라는 지역에서 민란이 일어나 태수가 살해되는 일이 생겨 등즐이 보복으로 우후를 그곳 군수로 파견했다.

사지로 가는 우후를 위로하기 위해 친구들이 모였다. 우후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태평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구부러진 뿌리와 뒤틀린 옹이마디를 만나지 않고서야 어찌 날카로운 칼날의 진가를 알 수 있겠는가(不遇槃根錯節 何以別利器乎/ 불우반근착절 하이별리기호)?’ 험지에 가서야 진가를 발휘한다는 이야기였다. 과연 우후는 민란을 깨끗이 수습하고 역량을 인정받았다. ‘後漢書(후한서)’ 우후전에 나온다.

세상사에 이해관계가 얽히지 않는 곳이 없겠지만 항상 시끄러운 곳이 정치판이다. 정권을 잡는 것이 존재 이유인 정당이라 이해할 만하지만 국민들의 눈에는 산적한 민생을 두고 싸움만 한다고 여긴다. 협상과 양보는 얽힌 뿌리와 가지를 헤치는데 도움이 되련만 그것이 좀처럼 어렵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