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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1월 19일 수요일

반식재상ㅣ伴食宰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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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적이 귤을 품다. 지극한 효성

○ 陸(뭍 륙) 績(길쌈할 적) 懷(품을 회) 橘(귤 귤)

육적은 吳(오)나라 왕 孫權(손권)의 참모를 지낸 사람이다. 그가 6세 때 九江(구강)이란 곳에서 後漢(후한) 말의 명문 袁術(원술)을 만났다. 영특한 꼬마를 보고 원술이 쟁반에 귤을 담아 내 왔는데 육적은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있다가 주인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귤을 품속에 감췄다. 갈 때가 되어 고별인사를 하려고 일어나 허리를 굽히자 귤이 굴러 떨어졌다.

꼬마가 어쩔 줄을 모르고 당황하는 것을 달래며 원술이 연유를 물어보니 무릎을 꿇고 대답했다. ‘집에 계시는 어머니를 드리려고 그랬습니다.’ 이 말을 들은 원술은 그 효성을 매우 기특하게 여겨 남은 귤을 모두 싸 주었다. 元(원)나라 때 郭居敬(곽거경)이 중국의 대표적인 효자 24명의 효행을 적은 ‘二十四孝(이십사효)’에 나와 있다.

조선 가사문학의 거봉 蘆溪(노계) 朴仁老(박인로)의 ‘早紅柹歌(조홍시가)’ 제1수는 홍시를 갖다 드릴 부모가 안 계신 것을 슬퍼했다. 제2수에는 ‘왕상의 잉어 잡고 맹종의 죽순 꺾어/ 검던 머리 희도록 노래자의 옷을 입고/ 일생에 정성껏 효도함을 증자같이 하리라’고 읊고 있다. 여기에는 24효 중의 王祥(왕상), 孟宗(맹종), 老萊子(노래자), 曾子(증자)가 모두 등장한다.

2025년 11월 18일 화요일

반식재상ㅣ伴食宰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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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무능한 재상

○ 伴(짝 반) 食(밥 식) 宰(재상 재) 相(서로 상)

곁에 모시고 밥을 먹는 재상(宰相)이라는 뜻으로,무위도식(無爲徒食)으로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무능(無能)한 대신(大臣)을 비꼬아 이르는 말

‘舊唐書(구당서)’의 盧懷愼(노회신)전과 ‘十八史略(십팔사략)’에 이 성어의 유래가 나온다. 唐(당)나라 6대 玄宗(현종)은 후기 楊貴妃(양귀비)에 빠져 국정을 망치기 전까지는 ‘開元之治(개원지치)’라 하여 문물의 전성기를 구가한 왕이었다.

서기 713년부터 741년까지 29년 동안 계속된 이 시기에 姚崇(요숭)을 비롯한 현명한 재상을 등용하여 선정을 폈기에 2대 太宗(태종)때의 貞觀之治(정관지치)에 버금가는 태평성대가 가능했다. 요숭, 宋璟(송경), 張九齡(장구령) 등의 명신과 함께 노회신도 재상 자리에 있었다.

그는 대단히 청렴결백했고 욕심이 없어서 녹봉이 나오면 모두 어려운 친지나 친척들에게 나누어 주곤 하여 정작 식솔들은 굶주림에 떨기까지 했다. 이처럼 곧은 인품과는 별개로 업무 처리하는 능력은 미흡했던 모양이다. 어느 날 요숭이 일이 생겨 정무를 노회신에게 맡기고 10일간 휴가를 가게 됐다.

노회신은 중요한 문제를 혼자 해결하지 못하고 서류만 쌓아뒀다가 휴가를 끝낸 요숭이 돌아오자 의논하여 다 해결했다. 그는 자신이 요숭보다 못한 것을 깨닫고는 무슨 일이든 그와 일일이 상의해 처리했다. 이리하여 사람들은 노회신을 재상 옆에 있는 대신이란 뜻으로 相伴大臣(상반대신) 또는 伴食宰相이라 조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