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방모두단房謀杜斷 – 방현령의 지모와 두여회의 결단력 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방모두단房謀杜斷 – 방현령의 지모와 두여회의 결단력 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24년 4월 16일 화요일

방모두단房謀杜斷 – 방현령의 지모와 두여회의 결단력 

방모두단房謀杜斷 – 방현령의 지모와 두여회의 결단력 

방모두단(房謀杜斷) – 방현령의 지모와 두여회의 결단력\xa0

방 방(戶/4) 꾀 모(言/9) 막을 두(木/3) 끊을 단(斤/14)

\xa0

어지러운 亂世(난세)에 반하여 나라를 잘 다스린 시대를 治世(치세)라 한다. 잘 알려진 貞觀之治(정관지치)는 중국 역사상 가장 강력한 국력을 자랑했고, 문화를 꽃피웠다는 唐(당)나라 2대 황제 太宗(태종)의 치세(626∼649)를 일컫는 말이다. 태종이 훌륭한 정치를 베풀 때의 연호가 貞觀(정관)이다.

\xa0

물론 임금 혼자의 힘으로 나라를 잘 다스린 것이 아니라 뛰어난 신하의 뒷받침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굽힐 줄 모르는 直諫(직간)으로 태종을 괴롭혔던 魏徵(위징, 580~643)과 함께 房玄齡(방현령, 578~648), 杜如晦(두여회, 585~630) 등이 그들이다.

\xa0

이들 중 방현령의 지모(房謀)와 두여회의 결단력(杜斷)이란 말에서 나온 것이 이 성어다. 구성원 각자가 특색이 있고 장점이 있는데 이것을 잘 조화시켜 일을 원만하게 해 나가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아무리 훌륭한 지략이 있어도 추진력이 없으면 일이 안 되고, 또 그것을 아울러 이끄는 지도력이 없으면 성공할 수 없다. 중앙집권제를 확립하고 영토를 확장하여 당 왕조의 기초를 튼튼히 한 태종에겐 좌우로 방현령과 두여회라는 명재상이 있어 조건이 완비되어 있었다.

\xa0

房杜(방두)로도 불린 이들 두 명신은 개국 초기의 모든 제도와 법령도 협의하여 만들었다. 두 사람은 장점이 달라서 두여회는 결론을 내리는데 과감했고, 방현령은 일을 도모하는데 뛰어났다(如晦長于斷 而玄齡善謀/ 여회장우단 이현령선모). 매번 황제의 처소에서 국사를 논할 때마다 방현령은 훌륭한 계책과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했지만 결단을 머뭇거릴 때가 많았다.

\xa0

태종은 그때마다 두여회를 불러 의견을 묻고 분석토록 했는데 즉시 방현령의 계책을 지지하면서 명쾌하게 추진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이렇게 두 사람은 서로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한 마음으로 태종을 보필할 수 있었다. ‘新唐書(신당서)’와 ‘舊唐書(구당서)’ 모두 다 실려 있다.

\xa0

일을 맡아 처리할 때 멋진 아이디어를 내고도 실행 방법이 잘못돼 그르칠 수 있다. 한 계책을 추진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 나올 수가 있다. 여러 계책과 실천하는 길 중에서 가장 나은 방법을 채택하는 길은 항상 소통하는 지도자의 식견과 결단력이다. 항상 좋은 지략과 바른 실행 방법을 알려주는 방모와 두단이 있으면 금상첨화겠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