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중사영杯中蛇影 - 술잔 위에 비친 뱀의 그림자. 지나친 근심
배중사영(杯中蛇影) - 술잔 위에 비친 뱀의 그림자. 지나친 근심
잔 배(木/4) 가운데 중(丨/3) 긴뱀 사(虫/5) 그림자 영(彡/12)
편안한 친구와 마주 앉아 술을 마시는데 술잔 속(杯中)에 뱀의 그림자(蛇影)가 어른거린다. 이 친구가 술에 무엇을 탔을까 의심하니 술맛이 싹 달아난다. 믿을 만한 친구인데 그럴 리가 없다며 억지로 마셨지만 속이 영 안 좋다. 이와 같이 아무 것도 아닌 일에 의심을 품고 지나치게 근심을 하거나 자기 스스로 걱정을 사서 하는 경우에 이 성어를 쓴다. 하늘이 무너질까 걱정하여 늘 안절부절 지낸 杞(기)나라 사람 杞人憂天(기인우천)과 꼭 같은 말이다.
중국 三國時代(삼국시대, 220년~280년) 이후 세워진 晉(진)나라에 樂廣(악광)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집이 가난하여 독학을 했어도 영리하고 신중해서 주위의 칭찬이 자자했다. 장성한 뒤 벼슬자리에 천거되어 河南(하남) 지역의 태수로 있을 때의 일이다.
친한 벗을 불러 술자리를 가진 적이 있었는데 자주 들르던 친구가 그 이후 연락이 두절되었다. 이상하게 생각하여 악광이 편지로 연유를 물었더니 답신이 왔다. 지난 번 술을 마실 때 권한 술잔에 조그만 뱀 한 마리가 보였다고 했다. 억지로 마셨더니 이후 병이 나 지금까지 누워 있다는 것이다.
술은 관가의 자기 방이었는데 곰곰 생각해보니 친구의 뒤편 벽에 뱀이 그려진 활이 걸려 있었다. 악광이 다시 친구를 불러 그 자리에서 술을 따르며 또 뱀이 보이느냐고 물었다. 전과 똑 같이 보인다고 대답하자 악광이 뒷벽을 가리키며 박장대소했다.
‘그건 저 활에 그려져 있는 뱀의 그림자(杯中蛇影)일세.’ 친구는 그 말을 듣고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달았다. 그리고선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고 했다. ‘晉書(진서)’ 악광전에 실려 있는 이야기다. 後漢(후한) 말 학자 應劭(응소, 劭는 아름다울 소)가 쓴 ‘風俗通義(풍속통의)’에는 등장인물이 應郴(응침, 郴은 고을이름 침)과 杜宣(두선)으로 다를 뿐 내용은 같이 나온다.
거짓은 더 큰 거짓이 필요하고 의심은 의심을 낳는다. 국가나 정당이나 이해집단을 막론하고 협상을 할 때 상대방의 안을 너무 이것저것 따지며 의심을 한다면 한이 없다. 선의로 받아들일 것은 받고 줄 것은 줘야 앞으로의 거래가 원활하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