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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27일 수요일

백독불염百讀不厭 - 여러 번 읽어도 싫증나지 않다, 잘 읽히는 좋은 글, 꾸준한 노력을 뜻

백독불염百讀不厭 - 여러 번 읽어도 싫증나지 않다, 잘 읽히는 좋은 글, 꾸준한 노력을 뜻함

백독불염(百讀不厭) - 여러 번 읽어도 싫증나지 않다, 잘 읽히는 좋은 글, 꾸준한 노력을 뜻함

일백 백(白/1) 읽을 독(言/15) 아닐 불(一/3) 싫어할 염(厂/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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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책을 많이 읽으라고 깨우치는 글이 많다. 책을 많이 읽으면 그 속에서 황금의 집이 나온다고 書中自有黃金屋(서중자유황금옥)라 강조해도 실제로 가까이 하기는 쉽지 않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열심히 책을 읽어 뜻을 이룬 중국 東晋(동진) 때의 학자 車胤(차윤)과 孫康(손강)은 車螢孫雪(차형손설)의 성어에도 이름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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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카락을 묶고 넓적다리를 송곳으로 찔러 잠을 쫓으며 공부한 懸頭刺股(현두자고)의 자학 독서인도 있다. 魏(위)의 董遇(동우)는 여러 번 읽으면 뜻이 저절로 드러난다고 讀書百遍 義自見(독서백편 의자현)이라 했는데 이렇게 되려면 백번을 읽어도(百讀) 싫증나지 않을 만큼(不厭) 글도 좋아야 할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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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성어는 蘇軾(소식)의 시 구절에서 나왔다. 소식이라 하면 아호 東坡(동파)와 명작 赤壁賦(적벽부)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정도로 北宋(북송)을 대표하는 제1의 시인이자 문장가였다. 후일 대신까지 오르는 安惇(안돈)이란 사람이 처음 향시에 낙방했을 때 풀이 죽어 술만 마시는 것을 보고 소식이 위로의 시를 써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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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책을 싫다 않고 백번이나 읽었으니, 숙독하고 깊이 생각하면 스스로 알게 될 걸세(舊書不厭回讀 熟讀深思子自知/ 구서부염회독 숙독심사자자지).’ 그러면서 벼슬자리에 올랐을 때는 그만 두지 못할까 두려워할 것이니 지금의 은거생활을 고마워하며 독서에 힘쓰라고 당부한다. 시의 제목도 ‘실의에 빠져 낙향하는 안돈을 전송하며(送安惇秀才失解西歸/ 송안돈수재실해서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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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백번 읽어 싫증나지 않는다고 한 시가 있다. 唐(당)의 유명시인 王昌齡(왕창령)과 王之渙(왕지환) 등의 작품을 읽고 ‘변새시의 명작으로 백 번을 읽어도 싫증나지 않는다(邊塞名作 百讀不厭/ 변새명작 백독불염)’고 평한 淸(청)의 施補華(시보화)다. 匈奴(흉노)와 대치한 변방을 노래한 시들인데 정서가 슬퍼서 백 번 읽어도 질리지 않는다고 ‘峴傭說詩(현용설시)’에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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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창령이 지은 ‘出塞(출새)’의 첫 한 구절만 보자. ‘진나라 때 떴던 달 한나라 때 관문을 비추건만, 만 리 먼 길 출정한 사람들 돌아오지 못했네(秦時明月漢時關 萬里長征人未還/ 진시명월한시관 만리장정인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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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데 백번 읽어도 싫증나지 않으면 그만큼 좋은 글일 수 있고, 열심히 공부한 사람이 어떤 목표를 두고 꾸준히 정진했을 수 있다. 이처럼 여러 번 들어도 싫증이 안 나는 百聽不厭(백청불염)의 좋은 소리는 찾아가 듣고, 孔子(공자) 말씀처럼 ‘묵묵히 마음속에 새겨 두고 배우는데 싫증내지 않는다면(默而識之 學而不厭/ 묵이지지 학이불염)’ 학문하는 사람이 아니라도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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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남을 속이는 것에 절대로 싫증내지 말라는 말이 예외다. 그러나 이 말은 생사가 걸린 전장에서 적을 속이는 일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兵不厭詐(병불염사)이니 걱정할 일이 아니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