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리부미百里負米 – 쌀을 지고 백 리를 가다, 가난해도 부모를 잘 봉양하다.
백리부미(百里負米) – 쌀을 지고 백 리를 가다, 가난해도 부모를 잘 봉양하다.
일백 백(白/1) 마을 리(里/0) 질 부(貝/2) 쌀 미(米/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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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를 잘 섬기는 효도는 인간의 도리라며 예부터 중시해왔고 수많은 성어도 남겼다. 孝(효)란 글자를 보더라도 아들(子)이 노인(老의 획을 줄인 耂)를 업고 있는 모양이다. 이 근본이 잘 된 사람이 인간관계도 좋고, 임금도 잘 섬긴다. 孝經(효경)에 나오는 말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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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를 사랑하는 사람은 남을 미워하지 않고, 어버이를 존경하는 사람은 남에게 오만하지 않다(愛親者 不敢惡於人 敬親者 不敢慢於人/ 애친자 불감오어인 경친자 불감만어인).’ 모두들 효를 기렸기 때문에 전해오는 효자도 많다. 元(원) 나라 때 郭居敬(곽거경)이 쓴 二十四孝(이십사효)엔 王祥(왕상), 孟宗(맹종), 老萊子(노래자), 陸績(육적) 등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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孔子(공자)의 제자 중에 효를 실천한 사람으로 효경을 저술했다고 하는 曾子(증자)를 첫 손에 꼽는다. 의외로 子路(자로, 기원전 543~480)도 그 안에 들어간다. 제자 중에서 가장 연장이었던 자로는 무뢰한 출신으로 성격이 강직했는데 공자의 훈계 이후 헌신적으로 스승을 받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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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仲由(중유)인 자로는 魯(노)나라에 있을 때 집안이 아주 가난하여 조악한 음식을 먹으면서 자랐다. 하지만 조그만 벼슬자리를 얻게 되자 봉록으로 받은 쌀을 지고 백여 리나 떨어진 집에 가 부모님을 봉양했다는 효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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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로가 부모에 대한 자신의 심정을 공자에게 토로한 내용이 ‘孔子家語(공자가어)’에 실려 있다. 공자와 문인들이 주고받은 논의를 王肅(왕숙)이 편찬한 책인데 致思(치사)편을 보자. 집이 가난한 시절 부모님을 섬길 때는 봉록의 많고 적음을 가리지 않았다며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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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명아주 잎과 콩잎과 같은 나쁜 음식을 대접했고, 부모께 직접 쌀을 백 리 밖에서 져 날랐습니다(常食藜藿之實 爲親負米百里之外/ 상식려곽지실 위친부미백리지외).’ 藜는 명아주 려, 藿은 콩잎 곽.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높은 관직에 올랐을 때 자로는 호화로운 음식을 앞에 두고도 옛날 쌀을 지고 가 봉양했을 때가 행복했다고 탄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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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온 효자가 되어야 자식이 반 효자’란 말이 있다. 요즘은 핵가족이라 부모가 효도하는 것을 보기가 어렵다. 그래서인지 노인을 폄하하는 유튭 영상이나 댓글들이 넘쳐난다고 한다. 젊은이들이 희망을 잃은 것이 노인 때문이라는 것이다. 수명이 늘어 자리를 차지하는 면이 있을지라도 근본원인이 거기에 있지 않고, 앞 세대부터 이어 온 나라라는 인식을 갖고 경로의 정신을 가졌으면 한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