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인수君舟人水 – 임금은 배, 백성은 물
군주인수(君舟人水) – 임금은 배, 백성은 물
임금 군(口/4) 배 주(舟/0) 사람 인(人/0) 물 수(水/0)
임금은 배(君舟)이고 백성은 배를 띄우는 물(人水)이라는 말은 예부터 지도자들이 즐겨 인용하는 말로 유명하다. 백성들이 임금을 잘 받들 수 있지만, 잘못 다스릴 때는 배를 엎을 수 있다며 명군들은 명심하고 경계를 한다. 똑 같은 뜻으로 이전에 소개한 載舟覆舟(재주복주)가 있다. 역시 배를 실어가기도 하고 뒤엎기도 하는 물을 백성에 비유했다. 戰國時代(전국시대) 때의 荀子(순자)에서 언급된 후 여러 곳에서 비슷하게 인용됐는데 풀어 써서 水可載舟 亦可覆舟(수가재주 역가복주) 혹은 水能載舟 亦能覆舟(수능재주 역능복주)라 하면 뜻이 더 명확하다.
唐(당)나라 2대 太宗(태종) 李世民(이세민)이 신하들과 문답을 주고받은 ‘貞觀政要(정관정요)’는 吳兢(오긍)이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제왕의 필독서로 꼽혔다. 태종은 隋(수)나라 말기의 혼란상을 바로잡고 중앙집권을 강화하여 중국 역사상 최고의 영주로 꼽힌다. 부친 高祖(고조) 李淵(이연)을 도와 각지의 반란군을 제압하고 수나라 수도 長安(장안)까지 점령하여 나라를 건립했다.
재위(626∼649) 23년간 공정한 정치를 펼쳐 貞觀之治(정관지치)라는 찬사도 받는다. 하지만 부친이 정권 창출에 큰 공이 있음에도 형 建成(건성)을 황태자로 삼자 왕자의 난을 일으켜 황궁의 북문인 玄武門(현무문)에서 형을 제거하고 양위를 받았다. 뛰어난 능력에도 힘겹게 왕위에 오른 태종은 그러나 건성의 측근이었던 魏徵(위징)을 간의대부로 삼는 등 고언을 받아들여 항상 백성을 생각하는 정치를 폈다.
성어가 나오는 부분을 보자. 하루는 태종이 신하들을 불러놓고 왕은 궁궐 깊은 곳에 있어 천하의 일을 다 알지 못하니 참된 눈과 귀가 되어 달라고 했다. 위징이 답하여 항상 깊은 연못을 지나고 살얼음 위를 걷는 것처럼 일을 처리하면 나라가 오래 이어진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어진다. ‘군주는 배요, 백성은 물이라.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고, 뒤집을 수도 있다는 옛말이 있습니다(君舟也 人水也 水能載舟 亦能覆舟/ 군주야 인수야 수능재주 역능복주).’ 政體(정체)편에 실려 있다. 民水(민수)가 人水(인수)로 된 것은 태종 이름이라 避諱(피휘)한 것이라 한다.
항상 소통을 강조하며 자신은 아랫사람의 의견을 잘 듣는다는 지도자라도 듣기 좋은 말만을 담게 된다. 반대되는 측의 쓴 소리라도 반영해야 진정한 소통이라 할 수 있다.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일이라도 1400년 전의 당태종이 가장 소통 잘한 군주로 남아 있으니 실천은 어려운 모양이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