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아절현伯牙絶絃 - 백아가 거문고 줄을 끊다, 참다운 벗의 죽음을 슬퍼하다.
백아절현(伯牙絶絃) - 백아가 거문고 줄을 끊다, 참다운 벗의 죽음을 슬퍼하다.
맏 백(亻/5) 어금니 아(牙/0) 끊을 절(糸/6) 줄 현(糸/5)
우정을 기리는 명언은 동서에 걸쳐 숱하다. 어려서부터의 우정을 대표하는 竹馬故友(죽마고우)나 管鮑之交(관포지교), 목숨까지 바칠 수 있다는 肝膽相照(간담상조)나 刎頸之交(문경지교)는 실제 과장된 면이 있고 이해관계 앞에서는 아슬아슬하다. 이에 반해 신분을 뛰어넘는 우정은 친구의 능력을 알아주고 끊임없이 발전하게 하는 伯牙(백아)와 鍾子期(종자기) 사이를 뛰어넘을 것이 없을 정도다.
고관의 자리에 있었던 백아는 나무꾼 종자기와 의형제를 맺기까지 했다. 백아는 자신이 연주하는 거문고 가락을 이해해 주는 知音(지음)의 종자기가 세상에서 더없이 고마웠고 그가 세상을 떠나자 더 이상 의미 없다며 손을 놓았다. 伯牙(백아)가 악기의 줄을 끊어버리기까지(絶絃) 했던 것이다.
‘列子(열자)’를 비롯한 여러 고전에서 언급된 만큼 많이 알려지고 인용되었다. 중국 春秋時代(춘추시대) 晉(진)나라서 높은 벼슬을 하던 兪伯牙(유백아)는 거문고의 명수였다. 어느 때 백아는 연주하는 뜻을 기막히게 이해하는 종자기라는 나무꾼을 만났다. 그가 높은 산과 큰 강의 분위기를 시도하면 종자기는 태산이 우뚝하고 황하가 넘실댄다고 탄성을 연발한다. 高山流水(고산유수)는 여기서 비롯됐다.
그러나 불행히도 종자기는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후 백아는 거문고의 줄을 끊고 다시는 연주하지 않았다. 이 부분을 ‘呂氏春秋(여씨춘추)’에서는 이렇게 표현했다. 종자기가 죽자 ‘백아는 거문고 줄을 끊고, 죽을 때까지 연주하지 않았다(伯牙破琴絕絃 終身不復鼓琴/ 백아파금절현 종신불부고금).’ 孝行覽(효행람)편에 있다.
조선 中宗(중종)때 개혁정치를 펼치다 己卯士禍(기묘사화)로 목숨을 잃은 趙光祖(조광조, 1482~1519)는 백아와 종자기의 고사에서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음을 한탄하는 ‘詠琴(영금)’이란 시를 남겼다. 내용을 살펴보자. ‘옥 거문고로 천년의 곡조를 타지만, 속된 사람들 멍하니 귓전으로만 듣고 마네(瑤琴一彈千年調 聾俗紛紛但聽音/ 요금일탄천년조 농속분분단청음), 슬프다 종자기는 죽은 지 이미 오래, 세상에 뉘 있어 백아의 마음 알아주리(怊悵鐘期沒已久 世間誰知伯牙心/ 초창종기몰이구 세간수지백아심).’ 怊는 슬퍼할 초, 悵은 원망할 창.
성경 말씀에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요한복음)고 했는데 그러한 고귀한 우정은 점차 옅어지고 있다. 간을 내어줄 듯 친밀하게 굴다가도 이해관계가 걸리면 언제 보았느냐는 듯 등을 돌리고 심지어 원수가 된다.
극심한 경쟁시대라 어릴 때부터 모두들 학원으로 다닌다고 동네에서 같이 놀아줄 친구가 없다고 한다. 중고등학교로 올라가서는 친구가 잘 되면 자기에게 손해가 온다고 기를 쓰고 깎아내리기 일쑤다. 이렇게 삭막한 환경에서 자란다면 그 누가 친구에게 이웃에게 양보하겠는가.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