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병든 숭례문
■ 병든 숭례문
국보 제1호 숭례문이 2008년 2월 10일에 불에 타 제 모습을 잃은 지 벌써 15여년이 훌쩍 지났다. 5년에 걸친 힘든 복원 공사를 거쳐 제 모습을 찾는 듯 했으나, 몇 달 만에 곳곳에서 서까래단청이 벗겨지고 목재가 갈라지고 뒤틀리는 등 문제가 발생했다.
숭례문 복원에 걸린 기간은 5년 2개월.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지만, 문화재 복원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한다면 긴 시간도 아니다. 복원에 쓰이는 목재는 7년이나 8년 이상 충분히 말린 것이라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이것만 보더라도 숭례문을 복원하는 작업은 전통 공법으로 천천히 긴 시간을 들여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명박 정권은 자신의 정권 내 공사를 끝마치려는 욕심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우리의 빨리빨리 문화로 인한 조급함 때문이었는지, 공사를 무리하게 감행하여 복원을 마무리하였다. 그 결과, 복원된 숭례문은 수많은 잡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일어났던 문제는 숭례문의 단청이었다. 단청이 갈라져 벗겨지는 현상이 일어난 것이었다. 원인은 단청 위에 코팅 목적으로 바르는 동유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당시 나무에 들기름과 합성수지를 바르라는 지시가 있었지만, 부득불 전통기법을 고수하겠다며 동유를 갖다 발랐다. 하지만, 문화재청이 작성한 동유 실험보고서를 보면, 분명히 단청위에 동유를 바르면 안료가 갈라지거나 벗겨지는 현상이 일어난다고 되어 있었다고 한다. 훼손될 걸 뻔히 알면서도 부득불 강행한 것이다. 또한, 현판은 변색되어 갈라지고, 곳곳에 물은 새고 지붕에 얹은 기와는 깨진 곳도 있었다. 거기다가 가장 어처구니가 없는 일은 숭례문 복원에 쓰였던 나무가 우리나라에서 공급된 금강송이 아니라, 그 금강송을 빼돌리고 러시아에서 수입된 나무를 사용했다는 것이었다.
제대로 말린 나무라도 사용했더라면 그나마 괜찮았을 터인데, 제대로 마르지도 않은 나무를 기둥이랍시고 세워놓았으니 뒤틀리고 쩍쩍 갈라지고 말았다. 앞으로 더 갈라질 수도 있다고 하니, 숭례문은 총체적 부실공사로 깊은 병이 들고 말았다. 전문가들은 최소 20년은 지나서 일어나야 하는 일들이 1년 만에 벌어진 것이라고 한다. 정말 기가 차고 안타까운 일이다.
또 하나, 석굴암도 위험하다. 신라 경덕왕 때 당시 재상이었던 김대성이 세운 석굴암은 조선시대의 억불(抑佛)정책으로 폐사되어 황폐해져 있던 것을 일제강점기 우연히 길을 지나던 우체부에 의해 발견되었다. 오랜 세월 돌보지 않은 석굴암은 풍화현상으로 훼손이 심했다. 일제는 자기들이 복원을 하겠다며 손을 대기 시작했다. 그 결과, 우리가 현재 볼 수 있는 본존불 하나만을 남기고 석굴암에 있던 석탑과 불상은 모두 해체되고 사라져 버렸다. 또한, 석굴암을 둘러쌓고 있는 지붕을 콘크리트로 덮어버리는 바람에 문제가 발생했다.
석굴암은 감로수(甘露水)라 하여 불상 아래로 흐르는 물을 놔둠으로서 온도와 습도 유지가 가능했는데, 자연스런 공기 흐름이 막히게 되자, 습기가 차게 된 것이다. 여름에 얼음물이 담긴 컵을 놔두면 컵 표면에 결로현상이 일어나는 것과 같다. 석굴함의 놀라운 자연적이고 과학적인 건축공법을 이해하지 못한 채 비가 새서 습기가 차는 것이라 하여 1960년대에는 콘크리트 위에 콘크리트를 한 겹 더 덧씌우는 공사를 하였다. 잘못된 보수로 인해 습기가 차고 곰팡이가 생기자, 그 해결책으로 석굴암 내 온도를 에어컨디셔너로 유지하고 있지만, 이로 인한 미세한 진동은 알게 모르게 석굴암에 영향을 주어 균열이 생기고 있다고 한다. 어쩌면 귀중한 우리 문화재 석굴암을 앞으로 볼 수 없게 되는 날이 올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