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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11일 목요일

붕당정치朋黨政治 1편

■ 붕당정치朋黨政治 1편

■ 붕당정치(朋黨政治) 1편

훈구파(勳舊派)는 왕을 도와주고 그 대가로 높은 벼슬에 올랐던 조선 초기 공신세력들을 일컫는 말이다.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세우는 데 공을 세운 개국 공신과 세조가 조카인 단종의 자리를 빼앗기 위해 일으킨 계유정난에서 공을 세운 공신들이 이에 해당한다. 세조와 예종을 이어 성종이 즉위했을 때는 주로 세조 때 공을 세운 훈구파의 세력이 매우 강하였다.

성종은 훈구파의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새로운 인물들을 관직에 불러들이기 시작했다. 지방에서 제자들을 기르며 학문연구에 힘쓰던 사림파이다. 이들은 주로 고려 말의 유학자인 길재·이색이나 조선 건국에 동참하지 않았던 정몽주 등의 학통을 이어받았다. 사림파는 벼슬을 하지 않는 대신 지방 서원을 중심으로 학문을 연구하고 제자를 양성하며, 향촌 사회를 안정시키는 일종의 마을 약속인 향약을 운영하면서 그들 나름대로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왕의 부름을 받자 관직에 나서면서 중요 요직을 차지하고 훈구파와의 대립이 시작되었다. 성종 때에는 경상도 지역에서 김종직을 따르는 선비들이 사림파의 중심 세력을 이루었고, 중종 때에는 조광조를 중심으로 경기·충청도 지역 출신 선비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이때부터 조선 조정에서 훈구파와 사림파의 세력 다툼이 벌어진 건 당연한 흐름이었다. 이 과정에서 사림파 선비들이 큰 화를 당해 죽거나 내쫓기는 4번의 사화(士禍)를 겪게 되었다. 그 뒤 약 100년의 세월이 흐른 뒤, 사림파와 훈구파 둘 중 어느 편이 살아남았을까? 지방 서원을 중심으로 인재양성에 힘썼던 사림파는 매번 화를 입어도 즉각 부활하여 선조 때 이르러서는 크게 세력을 키우는 시기를 맞이할 수 있었다.

명종이 미처 왕위 계승자를 정하지도 못한 채 갑자기 병세가 위독해져 34세의 나이로 죽자, 영의정 이준경이 명종 비인 인순왕후에게 물어 생전에 정해 놓은 중종의 서자 덕흥군(德興君)의 셋째 아들 하성군(河城君)으로 후계가 정해졌다. 이가 바로 선조이다. 조선시대에 서자도 아닌 서손(庶孫)이 임금이 된 유일한 사례이다.

선조가 아직 어린 탓에 대비인 인순왕후 심씨(명종 비)가 수렴청정을 했는데, 7개월 만에 섭정을 거두어 선조는 매우 어린 나이에 친정(親政)을 하게 되었다. 선조는 대학자인 이황과 이이의 학문과 인품을 존경하여 스승처럼 여겼던 왕이다. 그래서 왕위에 오르자 초기부터 기대승, 이황, 이이 등 높은 학식을 바탕으로 한 사림(士林)들이 크게 세를 이루어 조정을 좌우하게 되었다.

- 2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