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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29일 금요일

사육신死六臣 4편

■ 사육신死六臣 4편

■ 사육신(死六臣) 4편

세조는 이 사건에 집현전학사 출신이 주동이 되었다 하여 집현전을 없애버렸다.

이들을 사육신(死六臣)으로 명명한 것은 남효온이 지은 〈추강집 秋江集〉에 나오는 육신전(六臣傳)에 의한 것이다. 박팽년(朴彭年)·성삼문(成三問)·이개(李塏)·하위지(河緯地)·유성원(柳誠源)·유응부(兪應孚) 등 여섯 사람을 말한다. 하지만 〈조선왕조실록〉과 〈추강집〉의 기록이 ‘김문기’를 두고 다르게 되어있어 육신(六臣)에 대한 논란이 다소 있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이개·성삼문·박팽년 등 17인이 반역을 꾀했으며, 주모자는 성삼문·박팽년·하위지·이개·유성원·김문기 순으로 6인 만이 기록되어 있다. 김문기는 박팽년과 모의할 때 군 동원의 책임을 맡았다고 수록되어 있다. 이러한 사료에 따라 1982년 국사편찬위원회에서 김문기를 사육신에 포함하기도 한다. 서울특별시 동작구에 있는 사육신묘에 김문기의 가묘(假墓)가 설치되기도 했지만, 종래의 사육신 구성은 변경되지 않았다.

단종 복위 운동의 주모자가 꼭 사육신이라고 단정할만한 자료는 사실 없다. 다만 추국(推鞫)과정에서 주모자로 생각될만한 사람이 드러나고 있을 뿐이다. 즉, 김질이 고변할 때 성삼문의 말이라면서 모의자로 금성대군·성삼문·이개·하위지·유응부를 말했고, 성삼문이 잡혀와 첫 번 국문 때 박팽년·이개·하위지·유성원이 같이 모의했다 하고, 이 계획을 알고 있는 자는 유응부와 박쟁 이라고 말하였다. 박팽년의 공초에서는 성삼문·하위지·유성원·이개·김문기·성승·박쟁·유응부·권자신·송석동·윤영손·이휘·박중림 등 13인이 모의한 것으로 자백했다.

사건 5일 만에 그 전모를 밝힌 공식 명단에서 이개·성삼문·박팽년·하위지·유성원·박중림·권자신·김문기·성승·유응부·박쟁·송석동·최득지·최치지·윤영손·박기년·박대년 등 17인이 반역을 도모했다고 발표하였다. 그러나 순서대로 여러 사람의 이름을 거론했을 뿐, 역시 주모자임이 확실한 성삼문과 박팽년을 제외하고는 사육신이 꼭 누구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한다.

실패로 끝난 단종 복위사건은 단종에게는 오히려 악재로 작용했다. 단종은 상왕에서 쫒겨나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등되었다. 또한 문종의 비(妃)였던 현덕왕후 권씨는 사후(死後)에 폐비되고 무덤이 파헤쳐지는 수난을 겪었다. 사육신 가문의 남자들은 모두 죽임을 당했고 삼대(三代)가 참화를 입었다. 세조는 사육신의 처나 딸들을 공신들의 여종으로 주었다. 성삼문의 아내 차산은 박종우에게 주어졌고, 박팽년의 아내 옥금은 정인지에게 주어졌다.

-5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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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공 : KIMSEM이 역사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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