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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24일 일요일

연하고질煙霞痼疾 - 안개와 노을을 사랑하는 병, 산수를 사랑하고 즐기는 성벽

연하고질煙霞痼疾 - 안개와 노을을 사랑하는 병, 산수를 사랑하고 즐기는 성벽

연하고질(煙霞痼疾) - 안개와 노을을 사랑하는 병, 산수를 사랑하고 즐기는 성벽

연기 연(火/9) 노을 하(雨/9) 고질 고(疒/8) 병 질(疒/5)

연기 煙(연)은 안개의 뜻도 있어 煙霞(연하)는 안개와 노을을 아울러 이르는 말임과 동시에 고요한 산수의 경치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안개와 노을이 오랫동안 앓고 있어 고치기 어려운 痼疾(고질)일 리는 없고 산수를 깊이 사랑하는 마음이 되돌릴 수가 없을 정도가 되었다는 뜻이다.

여기에 항상 따라붙는 泉石膏肓(천석고황)과 함께 중국 唐(당)나라 때의 은사 田游巖(전유암)의 고사에서 유래하여 강호묵객들이 즐겨 쓰게 됐다. 고황은 심장과 횡격막 부위로 여기까지 병이 미치면 고치지 못한다고 생각한 곳인데 맑은 샘과 수석을 사랑한 것이 불치의 지경에 이르렀다는 표현이다.

은사 전유암은 後晉(후진)때의 劉呴(유구, 呴는 숨내쉴 구)가 편찬한 ‘舊唐書(구당서)’나 宋(송)나라 정치가 歐陽脩(구양수)의 ‘新唐書(신당서)’에 모두 전한다. 당나라 3대 高宗(고종) 초기에 전유암은 걸출한 인재들이 모여드는 太學生(태학생)의 일원이었다가 얼마 안 있어 太白山(태백산)으로 들어갔다. 뒷날 모친과 부인도 세속을 싫어하여 함께 箕山(기산)에서 살게 됐다.

기산은 전설의 은자 許由(허유)가 堯(요) 임금이 왕위를 물려주려고 하자 潁川(영천)에서 귀를 씻은 뒤 은거한 곳이라 한다. 전유암은 허유의 무덤 옆에 살면서 許由東隣(허유동린)이라 칭하고 조정에서 여러 번 불렀으나 출사하지 않았다.

어느 때 고종이 嵩山(숭산) 행차 길에 친히 찾았을 때 야인의 복장으로도 전유암은 행동이 근엄했다. 고종이 맞으며 산속의 생활이 편안한지 물으니 답한다. ‘신은 샘과 바위에 대한 병이 이미 고황에 들고, 안개와 노을에 대한 병은 고질병 수준입니다(臣泉石膏肓 煙霞痼疾/ 신천석고황 연하고질).’ 산수에 중독되어 결코 빠져나올 수 없을 정도가 됐음을 강조하면서 좋은 시대를 만나 유유히 지내고 있다고 말한 것이다.

임금이 불러도 나가지 않고 산수에 묻혀 지내는 것이 後漢(후한)의 嚴光(엄광)을 노래한 ‘삼공 벼슬의 영화로도 이 강산과 바꿀 수 없도다(三公不換此江山/ 삼공불환차강산)’란 구절을 연상시킨다. 南宋(남송)의 시인 戴復古(대복고)의 작품이다.

초야에 묻힌 생활을 찬미하는 煙霞之癖(연하지벽)도 같은 말이고 더 강조한 것으로 달을 잡고 바람을 어깨에 멘다는 握月擔風(악월담풍)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옛 시가에도 등장한다. "이 몸이 한가하여/ 산수 간에 소요하니/ 부귀공명 뜻 없기는/ 연하고질 병이로다"란 작자미상의 滄浪曲(창랑곡)이다.

비슷한 표현으로 鄭澈(정철)의 關東別曲(관동별곡) 첫 부분 ‘강호애 병이 깁퍼 죽림의 누엇더니’에서의 江湖(강호) 사랑의 병도 연하고질이다. 자연훼손이 날로 심해지는 요즘 더욱 음미해야 할 좋은 말들이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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