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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3일 수요일

야불폐호夜不閉戶 - 밤에도 대문을 닫지 않는다, 살기 좋은 태평 시절

야불폐호夜不閉戶 - 밤에도 대문을 닫지 않는다, 살기 좋은 태평 시절

야불폐호(夜不閉戶) - 밤에도 대문을 닫지 않는다, 살기 좋은 태평 시절

밤 야(夕/5) 아닐 불(一/3) 닫을 폐(門/3) 집 호(戶/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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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화한 큰 길거리에서 달빛이 연기에 은은하게 비친다. 康衢煙月(강구연월)이다. 근심이나 걱정이 없는 편안한 세월은 太平烟月(태평연월)이라 한다. 道不拾遺(도불습유), 鑿飮耕食(착음경식), 含哺鼓腹(함포고복) 등등 사람이 아무런 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이러한 세상을 나타내는 말이 수두룩한 것은 그만큼 하루하루가 어려워 태평한 세월을 꿈꿨기 때문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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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입는 것뿐이 아닌 강도나 도둑도 없어야 안심할 것은 물론이다. 밤(夜)이 되어도 집의 대문을 닫지 않고(不閉戶) 활짝 열어둘 수 있으면 백성들이 살기 좋은 세상임이 틀림없으나 까마득한 옛날 堯舜之節(요순지절)이라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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孔子(공자)와 그 후학들이 고대의 의례를 모아 정리한 방대한 경전 ‘禮記(예기)’에 성어가 등장한다. 예절의 변천을 기록한 禮運(예운)편에 태평성대의 시절이 모두 지나갔다며 공자가 탄식한다. 성군이 다스리던 大道(대도)의 사회에서는 천하가 만인의 것이고, 현인에 정치를 맡김으로써 신뢰와 화목이 넘쳐났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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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땅에서 나는 재화를 독점하지 않았고 자기만을 위해 힘을 쓰지 않았다면서 공자는 이어간다. ‘그래서 도둑이 생기거나 난리가 일어나지 않았고(盜竊亂賊而不作/ 도절난적이부작), 사람들은 바깥 대문을 잠그지 않았다(故外戶而不閉/ 고외호이불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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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史記(사기)’에는 요순의 시대보다 훨씬 뒤인 春秋時代(춘추시대) 鄭(정)나라의 명신 子産(자산)도 이런 정치를 베풀었다고 칭찬한다. 재상으로 있으면서 군주와 아랫사람을 恭敬惠義(공경혜의)로 대해 공자도 높이 평가한 사람이다. 循吏(순리) 열전에 昭君(소군)이 자산을 등용한 뒤부터 안락한 사회가 됐다고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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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이 지나 소인배의 경박한 놀이가 없어지고 노소가 모두 편안해졌다. ‘2년이 지나자 시장에서 값을 에누리하지 않았고(二年 市不豫賈/ 이년 시불예가), 3년이 되자 밤에 문을 잠그는 일이 없어지고 길에서 떨어진 물건을 줍는 사람이 없었다(三年 門不夜關 道不拾遺/ 삼년 문불야관 도불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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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고르게 잘 산다면 밤에 문 열어놓고 남의 물건 탐을 내지 않겠지만 오래 전 태평성대에만 상상할 수 있다. 그래도 함께 모여 서로 도우며 일하던 농경시대엔 대문을 활짝 열고 지냈을 듯하다. 산업이 발전하고 가진 것이 많아지면서 富(부)가 부를 낳아 빈부의 격차는 벌어지고 私有(사유)의 재산은 남이 넘보지도 못한다. 더군다나 요즘의 주거는 대부분이 아파트이고, 호화단지는 전체 입구부터 철옹성이다. 이웃이 누구인지 알 필요도 없고 벨을 눌러도 경계심부터 드러내니 대문을 열고 산다는 생활은 꿈도 못 꾼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