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색色을 탐한 양녕대군 2편
■ 색(色)을 탐한 양녕대군 2편
태종의 달램과 꾸짖음에도 불구하고 양녕대군의 방탕한 생활은 바뀌지 않았고, 이미 14세에 혼인하여 부인까지 있는 상황에도 양녕대군의 여색 탐하기는 끝이 없었다.
1414년(태종 14년) 세자가 매형인 이백강의 집에서 벌어진 종친연회에서 밤이 깊도록 기생 초궁장을 끼고 술을 마셔 부왕의 꾸지람을 듣게 되는데, 1415년(태종15년) <태종실록>을 보면 세자와 여러 달 사통한 초궁장은 다름 아닌 상왕이자 큰아버지인 정종을 모신 기생이었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실록은 ‘세자는 그 사실을 모르고 저지른 일‘이라고 기록하고 있지만 어쨌든 큰아버지의 여인을 범한 패륜을 저질렀음은 분명하다. 1416년(태종16년) 세자는 매형인 이백강의 애첩 기생 칠점생을 궁궐로 데리고 오려고 한 일도 있었다.
태종 16년(1416년) 1월 어느 날, 세자 양녕대군은 곽선의 첩 ‘어리’가 아주 어여쁠 뿐만 아니라 춤과 노래도 뛰어나다는 소문을 들었다. 곽선은 은퇴한 고위 관료들에게 관행적으로 제수되는 중추부 부사(副使)로 재직 중이던 자이다. 성리학적 유교윤리가 지배하던 조선시대에 양반의 첩을 넘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더구나 양녕대군은 다음 보위에 오를 세자가 아니던가?
태종 17년 어리가 친척들을 만나기 위해 도성으로 들어왔다는 소식을 들은 양녕대군은 비단주머니를 징표로 내주며 어리를 데려오라고 명령했다. 세자가 보고 싶어 한다는 전갈을 받은 어리는 남편이 있는 몸이라며 거절했다.\xa0하지만 그날 저녁, 양녕대군은 환관들을 거느리고 어리가 머물고 있는 집으로 달려갔다. “세자께서 납셨다”는 환관의 전갈에 집주인 이승이 나타나 엎드렸다. 이승은 곽선의 양아들이었다. 양녕대군이 어리를 내놓으라고 윽박지르자 이승은 마지못해 어리를 내보냈다. 양녕대군은 어리에게 한눈에 깊이 반해버렸고, 그 길로 강제로 어리를 데리고 함께 동궁으로 돌아갔다.\xa0
곽선은 양녕대군의 서슬에 눌려 어리를 빼앗기고도 어찌할 수도 없었다. 양녕대군은 어리를 궁에 들인 것을 태종에게 숨겼지만 한 달도 되지 않아 들키고 말았다. 태종은 세자 주변의 간신배들을 엄벌에 처하고 어리를 출궁시켰다. 그때 세자는 어리의 인생이 가엾다며 제대로 먹지도 않고 잠도 자지 않았다. 이를 딱하게 여긴 장인 김한로가 자신의 집에 어리를 숨겼주었고, 다시 만나게 해주었다.\xa0
-3편에 계속
"♣ 제공 : KIMSEM의 역사로 놀자
"